페로선전/미 제3당 출현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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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득표율 19%… 유권자 기존정치에 염증
미국 대통령선거가 빌 클린턴민주당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페로 현상」의 배경과 향방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소속으로 나선 텍사스주출신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후보가 확고부동한 민주·공화 양당구도를 헤집고 많은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어낸 데서 이름 붙여진 페로현상이 결국 표로 그 위력을 입증,미 정치의 중대변화를 예고하는 전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분석들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페로는 메인주에서 30%에 육박하는 표를 긁어모은 것을 비롯,캔자스·아이오와주 등 27개주에서 20%를 웃도는 표를 얻는 등 전체적으로 1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무소속 또는 제3당후보의 경우 단1%만 건져도 성공작으로 평가되는 미 대선풍토에 비춰 대성공일 뿐 아니라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후보가 27%의 득표율을 기록한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특히 페로는 루스벨트와는 달리 지난 2월에야 출마선언과 함께 정계에 첫발을 내디딘 정치초년생인데다 7월의 출마포기­지난달의 재출마로 이어지는 우여곡절까지 겪은 터여서 이번 선전이 더욱 돋보인다.
이같은 페로현상이 가능했던데에는 최근 12년동안의 공화당 집권중 무려 4조달러에 이른 재정적자 등 미 경제의 총체적 불황이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자수성가한 대재벌 페로가 경제를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의 표출이라기 보다는 공화당 정권이 자발적 투자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목하에 부유층에 대한 감세조치를 취해 결국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가중시키고 제조업을 망가뜨린데 대해 조직적 반발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양당구도로 일관해온 미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페로현상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TV홍보전을 주무리고 한 페로의 선거운동전략 또한 주효했다. 페로는 조직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자비선거자금만 6천만달러를 투입,ABC·NBC·CBS 등 3대 TV방송망을 통해 30분·60분 단위의 개인광고를 쉴새없이 내보내는 등 대대적인 물량작전을 펼쳐 유권자들과의 간극을 좁히는데 성공했다.
결국 19%의 대량득표율로 열매맺은 이같은 페로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분석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단 페로가 앞으로 정치를 속개한다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일과성 돌풍」에 그치리라는 분석이 다소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페로가 이번 돌풍의 여세를 몰아 아예 제3당을 창당,4년후 재출마하거나 대타를 내세워 정치판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공화당정권의 경제실정이 페로현상을 낳은 것처럼 앞으로 클린턴의 민주당정권마저 미 경제를 극적으로 호전시키지 못할 경우 미국인들이 다시 제3의 대안을 찾아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고,그렇게 되면 이번의 페로현상을 능가하는 일대 변혁의 바람이 미 정계를 강타할 것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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