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서울을 바라보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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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27면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추격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늘 중국으로부터 배우는 처지에서 지난 20여 년 우리가 중국을 가르치는 입장에 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제 그 스승의 자리도 곧 내주어야 할 것 같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하느라고 머뭇거리는 사이 우리는 해양세력과 손잡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한 덕에 잠시 대륙세력인 중국을 앞서게 된 것이다.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문호를 열자 마치 ‘블랙홀’처럼 세계의 자본과 기술을 빨아들여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혹자는 20세기에 두 가지의 불가사의가 있는데 하나는 한국 사람처럼 평등사상이 강한 나라가 자본주의를 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 사람처럼 돈을 좋아하는 나라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필자는 5월 말께 ‘상하이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푸단(復旦)대학을 방문하였다. 우리의 숙소는 푸단대학이 민자 유치 방식으로 지은 호텔이었다. 그것도 대학의 캠퍼스 내에 위치해 있었다. 회의장은 100주년 기념관이었는데 30층이 넘는 대형 건물로 그 규모의 장대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회의에는 세계 30여 개국으로부터 학계ㆍ경제계ㆍ정치계 인사들이 300여 명 넘게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울과 비교하게 되자 나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푸단대학도 서강대학처럼 첫출발은 예수회가 시작했다. 지금 서강대학이 민자 유치로 국제인문관과 50주년 기념관을 짓기 위해 대형 할인점을 캠퍼스 지하에 유치하는 문제를 가지고 대학의 상업화니 뭐니 하면서 학내에 의견이 분분한 것을 생각할 때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칭화(淸華)대만 해도 칭화그룹이라고 할 만큼 아파트 사업을 포함해 50여개가 넘는 사업체를 거느리고 수익사업을 운용하고 있지 않은가. 또 우리는 규제에 묶여 12층 이상의 대학건물은 짓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푸단대학의 100주년 기념관을 보면서 더욱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중국은 넓은 캠퍼스 부지를 갖고 있는데도 고층건물을 허용하는데 우리처럼 좁은 캠퍼스 부지를 갖고 있는 대학에 대해 대학입학정원을 규제하면 됐지, 거기에다 이중으로 건물 층수까지 규제하고 있으니 답답함을 넘어 우울하게까지 만든다. 이제 고등교육의 양과 질에 있어서 중국이 우리를 앞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중국 명문대학들은 정부가 85% 이상 재정지원을 해주는데다 세계 유수 기업들이 앞다투어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해 ‘더 타임스’에서 발표한 대학 순위를 보더라도 세계 100대 대학 안에 서울대가 63위였고 베이징(北京)대학이 14위, 칭화대가 28위로 우리보다 앞서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상하이 포럼’만 해도 SK그룹의 재정지원으로 푸단대학이 주관하는 회의다. SK그룹은 베이징대학과 ‘베이징 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SK그룹이 중국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학 어느 곳도 ‘베이징 포럼’이나 ‘상하이 포럼’같은 국제회의를 개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대학들은 포럼을 통해 세계적인 지식과 정보들이 교류되고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지적 재산을 꾸준히 축적해 가고 있다.

저녁 식사 후 SK 최태원 회장과 한국 측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간담을 갖게 되었다. 이때 우리의 국가경쟁력과 생존전략 문제로 화두가 미치자 한국이 동북아 허브로서 생존하려면 우리 국민 모두가 영어ㆍ중국어ㆍ일본어 3개국 언어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이들 3개 국어는 공부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데까지 의견이 모이기도 했다. 바로 네덜란드의 모델을 참고하자는 것이었다. 아마 이런 말을 하게 되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이들이 또 뭐라고 할까. 세계는 급변하고 있고 국가의 경쟁력은 대학의 경쟁력에서 나온다고 하면서 우리 대학의 경쟁력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대학 안팎의 변화와 혁신이 없고서는 중국을 따라잡기도 힘들게 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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