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나는 여자의 머리에 호소한다" 돈 주앙의 '작업의 정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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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
더글러스 에이브람스 지음, 홍성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464쪽, 1만3000원

'남자가 여자를 꾀는 일의 속된 말.' 이젠 사전에도 뜻이 추가된 단어, '작업'이다. 이 말이 16세기 스페인의 한 남자에게 딱 어울린다. 1000여 명이나 되는 여자를 유혹했던 시대의 난봉꾼, 돈 주앙이 바로 그다.

400년 만에 발견된 그의 일기를 펼쳐든다. 과연 '작업의 정석'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호색한이 될 수 밖에 없었을까.

돈 주앙은 여성의 욕망을 꿰뚫는 남자였다. 소년 시절 첫사랑의 상대는 수녀였고, 그는 금기된 관계 속에서 이브의 기쁨.두려움.갈망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여성의 정절은 당연시하면서도 남자들은 전쟁과 식민지 개척으로 사라져가던 시대. 그의 '재능'은 더욱 빛났다.

"여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하지만 이 잔인한 시대에 여자를 이해하려는 남자들은 거의 없고, 가장 하찮은 사랑의 손길을 갈구하는 여자들은 많다."

여자를 깔보지 않는 것, 모든 여자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 또한 유혹의 기술이었다.

"나는 여자들 마음에 호소하지 않아…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 머리를 폄하하지만, 나는 먼저 여자들 머리에 호소해. 그리고 나서 여자들 허리로 내려가지.여자들 허리도 남자들처럼 자발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고." "공주의 순결이 제국에 중요한 것처럼 시녀의 순결도 그녀에게는 중요한 거야." 이런 식이다.

그런 돈 주앙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장군의 딸 아나를 만나 한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돈 주앙의 스승이자 친구인 페드로 백작과 결혼해야하는 운명이다. 전형적인 신파다. 돈 주앙이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아나가 말한다. "이 여자 저 여자를 찾아다니는 게 아마 당신의 아픈 마음과 외로움 때문인 것 같군요" 이후 돈 주앙은 아나와 도피를 계획하지만 백작의 방해로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생의 마지막을 맞는다.

'에디터 노트'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저자가 어느 날 미지의 인물에게서 돈 주앙의 일기 번역본을 받아, 고증을 덧붙여 쓴 형식이다. 그러나 이를 믿어야 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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