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침묵시위 … 조용해진 시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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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앞 광장에서 과천중앙고 학부모 120여 명이 ‘학습권 보장’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문규 기자


7일 오전 10시 정부과천청사 앞 광장.

X자가 그려진 흰색 마스크를 쓴 40~50대 여성 120여 명이 침묵시위를 시작했다. 운동장 가운데 앉은 이들은 '앗! 지금은 수업 중' '우리 아이들 공부하게 해 주세요' '조용한 시위문화 학습권이 보장된다'고 적힌 피켓을 연거푸 들어올렸다. 이들은 과천중앙고 학생들의 학부모다.

같은 시간 이곳에서 남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과천중앙고 3학년 학생들은 대입수능 모의고사를 치렀다. 학생들은 오랜만에 집회와 시위의 소음에 시달리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날 학부모들의 침묵시위는 집회.시위의 소음에 시달려 온 자녀를 지키기 위해 이루어졌다. 2000년 3월 개교한 과천중앙고 학생들은 인근 정부과천청사 운동장에서 닷새에 한 번꼴로 열리는 대규모 집회.시위로 피해를 보고 있다. <본지 5월 24, 25일자 3면>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쏟아지는 시끄러운 구호와 함성, 운동가요가 학교를 뒤덮기 때문이다. 참다 못한 학부모들은 3학년생들의 수능 모의고사 날에 맞춰 집회신고를 하고 집회 장소를 선점했다. 1학년과 2학년이 전국연합 학력고사를 치르는 13일에도 집회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 집회신고를 마쳤다. 다른 시위대의 집회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학부모 대표 강경숙(46)씨는 "집회로 인한 소음으로 수업도 안 되고 시험 때도 집중이 안 된다는 아이들의 하소연이 이어져 부모들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는 회사에 다니는 학부모들까지 휴가를 내고 참여했다. 3학년 학부모 이경휘(47)씨는 "부모들이 이런 시위를 해서 집회 문화가 개선된다면 매달 월차를 내고라도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2학년생인 김영혜(44)씨는 "오죽했으면 학부모들이 집회신고를 내고 시위를 벌이겠느냐"며 "올바른 시위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시험을 치른 3학년 학생들도 오랜만에 조용하게 시험을 치렀다며 만족한 표정들이다. 김모(19)군은 "지난달 중간고사 때는 시위로 인한 소음으로 외국어 듣기 시험을 망쳤는데 오늘은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김모(19.3년)군은 "시험 때마다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구호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졌는데 이번 시험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 성적이 올라갈 것 같다"고 말했다.

과천=정영진 기자 <chung@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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