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내각에 전권 위임해야/김영배(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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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4대 대통령선거를 공정관리하겠다는 현승종중립내각의 출범을 보면서 문득 「농가성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민자당을 만든 3당합당의 주역이었으며 얼마전까지만 해도 민자당에 의한 정권재창출을 부르짓던 대통령이 이제 공정한 대통령선거의 관리가 시대적 사명이라면서 민자당을 탈당해 엄정중립을 표방하니 정치의 속사정을 모르는 장삼이사들이 헷갈리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헷갈리는 장삼이사들
혹자는 그것이 권력갈등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하고,또 어떤 사람은 높은 사람들의 감정싸움이라고도 하고,또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정치적인 쇼라 하기도 한다. 그 구구한 소문들의 진위를 전부 가려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단 중립내각이 출범하고 나섰으니 적어도 몇가지 점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첫번째는 중립내각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냐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화 의지의 발로」니,「6·29의 완성」이니 하는 수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조치들로 중립내각의 의도를 살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정치적으로 흠 잡을 데 없는 인사들이 중립내각에 기용되었지만 그들이 실제로 선거관리의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정치적인 쇼로 의심받게 될 것이다.
중립내각의 성격이 진정코 각 당파를 초연한 입장에서 엄정한 선거관리에만 주력하겠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선거관리의 전권 만큼은 이 내각에 위임해야 한다. 이 점에 있어 노태우대통령의 명백한 태도표명이 있어야 한다. 그도 공정선거를 해치는 행위는 엄단하겠다고 했으니 이 내각의 중립성을 최대한 확보해줄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줘야 하며 정치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모호한 행동을 취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과 잡음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실천의지 없으면 허사
두번째는 공권력의 엄정중립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경찰이나 검찰이 그동안 선거때만 되면 알게 모르게 집권당을 지원했던게 사실이고 지난 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지나친 공권력의 개입이 있었던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안기부의 정치적 중립선언은 상당히 고무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는 안기부의 지금까지의 정치개입을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한게 사실이다.
지난 총선에서나 혹은 민자당 대통령후보의 조정과정에서 음지의 권력이 개입했다는 고발과 의혹이 잇따랐던 것은 불행한 기억이었다. 따라서 대통령은 필요한 법개정이 이뤄지기 전이라도 이른바 「대책회의」에 관여해왔던 안기부의 각 지역기구를 축소하고 안기부의 업무를 대북·대외정보수집에 집중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를 최소한 대통령선거와 동시에라도 실시하는 문제가 진지하게 검토돼야 한다. 우리 선거의 가장 큰 병폐는 두말 할 것도 없이 행정조직의 개입이다. 행정관료의 선거관여는 전연기군수 한준수씨 사건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행정조직의 선거개입배제는 공정선거의 요체다. 그러나 이미 총선때 상당수의 공무원들이 연고배치됐었고 선거결과에 대한 논공행상으로 대선을 준비해 왔었다. 아무리 중립내각이 나서고 전면적인 인사를 단행한다고 해도 이미 구축돼 있는 「음성적인 당정협조체제」를 깡그리 불식시키기는 어렵다. 때문에 단체장선거를 통해 그들에 대한 국민의 신임도 같이 물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연기에는 민자당의 당략과 내무공무원의 집단이기주의가 깔려 있다. 경제적 위기를 운위하지만 이미 지난해에 두차례의 지방의회선거를 실시했으나 그 때문에 경제가 잘못되었다는 분석은 별로 듣지 못했다.
○장선거 실시도 긴요
진정코 6공 1기의 정부가 민주화를 향한 과도적인 정부로서의 책무를 다할 생각이 있다면 시기가 더 늦어지기 전에 단체장선거 마저 마무리하고 선거이후의 정국전개에도 대비하는게 옳다.
중립내각에 관해서는 온갖 선언과 수사만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실천적인 조치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정략과 과열선거속에 한갖 정치쇼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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