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떠난 「노심」…엇갈린 해석/노 대통령 탈당과 박태준위원 거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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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지원 계속할 것”­“완전한 결별”/김 총재측 박 최고 설득에 총력
노태우대통령이 5일 민자당사 방문에 대한 찬반 여론에도 불구,당사를 굳이 방문해 탈당절차를 밟은 것을 놓고 엇갈린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영삼민자당총재쪽은 대통령의 탈당으로 동요기미를 보인 당에 대해 노 대통령이 선거중립을 위해 탈당하는 것일뿐 민자당 지지에는 변함 없다는 것을 보이는 가시적 조처라고 반색하고 있다. 일부 청와대 참모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등 정치권 일각은 노 대통령의 민자 당사 방문을 당과 정부간의 완전결별 의식으로 보고있다.
이 와중에서 박태준최고위원이 포철회장직 사퇴서를 내고 선거대책위원장마저 고사함으로써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선거중립 정국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예측불허 상황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9·18선언에 따른 탈당계 제출 「행사」준비에 부심해왔다.
이는 대의명분상 향후 엄정중립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데 중립성을 부각하면 당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되고 당에 대한 애정표현이 지나치면 여론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었다.
청와대는 이같은 미묘한 사정을 감안해 탈당에 즈음한 소회피력 문안은 물론 탈당계 제출시기·방법 등에도 세심한 고려를 해왔다. 노 대통령이 당적보유 상태에 있던 지난 2일 김영삼총재와 정국현안을 논의한 것도 그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또 무당적 대통령으로서 김대중민주·정주영국민당 대표를 만나는 것도 나름대로 숙고한 결과라는 얘기다.
청와대 참모들은 발언문 작성에서 『대통령으로서 엄정한 중립을 지키기 위해 당적을 떠나겠다고 밝힌 것』이라며 명분을 강조해 시비를 차단하는 한편 『이 결단은 공명선거를 이루기 위한 김 총재와 민자당의 신념을 수용한 결과』라는 말로 김 총재를 치켜세우는 등 곳곳에 고심의 흔적을 남겼다.
또 『선거문화를 혁신,민주정치를 더욱 발전시키는게 민자당 창당이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길』『3당합당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오늘의 안정·발전은 없을 것』이라는 표현과 강조도 눈여겨볼 대목으로 지적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5일 탈당계 제출 이후 민자당에 대한 자금·조직지원은 없는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등 원칙론을 강조하면서도 박 최고위원의 이탈가능성에 우려하는 등 입장정리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김영삼총재에 버금갈 정도로 가장 충격을 받고 진로모색에 고뇌해온 박태준최고위원은 일단 포철회장직 사임과 선대위원장 고사쪽으로 입장을 정리해 김 총재를 애태우고 있다.
박 최고위원은 2일 포철 광양제철소 행사때 노 대통령과 만나 포철회장직 사임 및 대선위원장 고사 등의 의향을 비친데 이어 4일 김 총재와의 회동에서도 같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박 최고위원에게 사전 상의없이 탈당선언을 한데 대해 해명하고 대선을 책임지고 치러달라고 설득한 것으로 청와대와 민정계 고위인사는 전했다.
김 총재도 4일 낮 1시간45분동안 오찬을 함께 하며 선대위원장 수락을 간청했으나 박 최고위원은 계속 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최고위원 주변에서는 태도가 명확하다. 박 최고위원은 4기 고로준공식으로 자신의 혼을 쏟아부은 「제철입국」의 뜻이 마무리 됐으며 개인으로서는 가장 명예스러운 시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포철회장직을 사임해야 한다면 지금이 최적기라는 것이다.
박 최고위원의 정치적 위상도 지난 4월 당내 대통령후보 경선직전 「타의」에 의해 주저앉은 이후로는 가장 좋은 상태다.
노 대통령의 탈당선언 이후 동요하던 당내 비주류 세력은 박 최고위원의 행보에 주목했으며 김 총재측도 박 최고위원의 잔류를 위해 김영구사무총장과 김윤환·최형우·박관용의원 등을 보내기도 했다.
박 최고위원은 포철회장직 포기­선대위원장 고사와 당내 잔류­선대위원장 수락의 두가지 방안을 놓고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탈당후 신당 추진세력에 동참하는 방안은 처음부터 베제됐다는 것이다.
박 최고위원으로서는 선대위원장을 맡을 경우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선대위원장 수행에 여러모로 역부족을 느끼는데다가 선거결과도 압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계산도 고려한듯 하다.
결과적으로 별 평가를 받지 못할 선대위원장을 기꺼이 수락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김 총재가 삼고초려할 경우 결국 선대위원장을 맡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고 있다.
김 총재가 마음을 비웠다는 박 최고위원을 얼마만큼 설득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박 최고위원의 거취가 최종 매듭될 가능성이 높으나 그의 성격상 설득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김현일·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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