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설〉전용문의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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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술이 한잔이라도 입에 들어가면, 아니 술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늘상「구원」이라는 단어를 화두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어떤 신경외과의사가 있다.
나는 그 이상한 사내를 최근에 만났다. 그리고 그가 88년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었으며, 그가 편안히 지내던 부산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올라온 것은 의사로서의 야심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좋은 소설을 써 소설가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에서임을 알게 되었다. 전용문이라 불리는 그가 이번에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이라는 장편소설을 펴냈다. 그 소실을 읽고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은 산에 미친 한 의사의 이야기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화자가 미쳐있는 것은 산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산으로 상징될 수 있는 구원, 혹은 구도를 향해서인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가 산에 오르는 것은 「땅의 끝 산의 꼭대기에 서서 하늘의 문을 여는 빗장을 벗겨내기」위해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설이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임도 어렵지 않게 알아 볼 수 있다.
따라서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은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한 신경외과 의사가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가 생겨, 혹은 어느 날 느닷없이 끼어든 의사라는 직업인에 대한 허망함을 이겨내기 위해 쓰여진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진지하고 치열한 정신이 자신의 삶 자체와 대결해 빚어낸 하나의 결정물이다.
그 결정물은 소설 자체의 완벽함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기보다, 일상 생활에 편안히 안주할 수 있을 조건을 충분히 갖춘 한 중년 사내의 삶에 대한 치열한 정신의 서늘함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렇지만 나는 작품속의 화자가 지닌 그 가열한 정신의 서늘함 속에서 가장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본다. 그는 밤에 홀로 있을 때에도「꽉 찬 풍족을 버리고 무너져 내릴지도 모를 여백을 찾아 뜻하는 하나의 길을 향해 집을 나선 사람들」을 생각하고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 하지만, 우리가 조금 찬찬히 생각 해보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삶, 아니 지극히 평범한 바로 나 자신의 삶 속에는 바로 그러한 꿈이 있어 나 자신을 지탱하게 해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한 치열한 정신의 기록이랄 수 있는 『바람으로 남은 사람들』은 한 성실한 생활인의 비망록으로서 의연히 보편성을 획득한다. 소설을 읽는 이가 소실속 화자의 삶을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여 자신을 돌아보게끔 만드는 힘을 『바람으로…』는 가지고 있다.
진형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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