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미(보밀)저·윤전귀역『황화』 |허구로만 볼 수 없는 핵재앙 "공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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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국교가 수립되어 본격적인 대륙진출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지난 40여년간 「죽의 장막」에 가려진채 이방인의 발걸음을 거부해온 거대한 사회주의 중국이 우리 앞에 그 실체를 하나하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대륙열풍을 반영하듯 요즘 출판계도 중국의 문학·역사·정치·경제·풍습 등을 소개하는 관련 서적들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책이 정치예언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 『황화(황화)』(도서출판 영웅간)다.
이 책은 중국의 막후 최고실력자인 덩샤오핑(등소평) 사망후에 벌어지게 될 중국의 정치판도를 예견한 소설이다.
그간 화제가 되기도 했고 저자 바오미(보밀)에 대한 호기심도 일어 소설을 읽었는데 그 화제성의 비중 못지않게 아주 재미있고 색다른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등소평을 포함한 중국의 정치원로들이 죽은후 중국에서는 6·4천안문사태의 재평가 및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물결이 거세게 일어난다. 그런 와중에 공산당 총서기는 유화정책을 펴고, 해외에 망명해 있는 「민주전선」이 귀국해 국내파 「인민전선」과 어느 정도 노선상 차이를 드러낸다.
군부의 실력자 왕펑(왕봉)은 국가의 전권을 장악하기 위해 총서기를 암살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경제적으로 앞선 광동과 복건을 중심으로 뭉친 남부지방의 목줄을 죈다.
이에 황스커(황사가)를 중심으로 남부는 일국다제를 주장하며 독립을 선포하고, 마침내 중국대륙은 내란에 휩싸인다.
전세가 불리해진 남부측은 대만에 구원을 요청하고, 대만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역전된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왕봉은 국가군사위원회를 소집, 핵무기사용결정을 내리며 마침내 핵폭탄은 대만을 초토화시킨다
대만과 남부연합군은 북군의 핵기지를 탈취하여 중·소 국경지대에 핵무기를 발사한다. 전면 핵공격을 결심한 왕봉은 국가군사위원회에 이를 정식안건으로 상정하고 이를 반대하는 스거(석과)는 이 사실을 제3국 대사관을 통해 알리려다 체포된뒤 사형선고를 받는다. 총서기 암살을 왕봉이 지휘했다는 사실이 킬러의 입을 통해 밝혀지자 왕봉은 만회하기 힘든 곤경에 처하게 되고, 핵전쟁의 확산을 막기 위한 미·소의 핵공격은 중국대륙을 동토의 나라로 만든다.
사형수에서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된 석과는 예전부터 구상해오던 중화민족의 대이동정책과 녹색혁명을 추진한다. 수천만명의 중국인들이 세계 각지로 분산 이주하여 부활의 길을 모색하고 이에 따라 증국대륙에는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게 된다.
이야기가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한번 우리주위를 살펴볼 때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핵무기·생태계파괴·환경오염등을 생각하면 이 책의 내용이 충격적인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에 빠져드는 것도 아마 내가 느꼈던 것들과 마찬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특히 그간 늘상 읽어왔던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이 소설은 방대한 스케일에, 그 구성이 영화적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게다가 무엇보다 독자들을 강하게 이끌고 가는 것은 이미 황무지로 변해버린 동토의 땅에 남아 최후의 멸망을 맞이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중국인민들의 처절한 모습이다.
나는 저자가 『황화』를 서구문명사회에 대한 경고장이라고 한 것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 「황화론」에 근거하여 동양인들의 부활을 기원하는 저자의 소망에도 동참하고 싶다.
대량 소비와 파괴로 치닫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핵무기만큼 두려운 존재다. 그 무서운 욕망을 잠재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일어난 끔찍한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제 북방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중국대륙은 우리에게 낯선 곳이 아닌 친근한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적성국가가 아닌 동반국가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 불어닥친 이 대륙열풍을 맛보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김만용<외대교수·신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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