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위업」불구 인기하락/콜 독일총리 집권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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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난에 고금리로 각국 비난 “내우외환”/과감한 추진력… 동서냉전체제 붕괴 일조
오는 10월1일로 헬무트 콜 독일총리가 집권 10년을 맞는다.
지난 82년 한스 디트리히 겐셔 당시 외무장관이 이끌던 자민당이 사민·자민 연정의 슈미트정권과 결별,기민·기사·자민당 연정을 탄생시키면서 재상에 오른 콜총리는 이후 83년,87년,90년 선거에서 승리해 3당 연정을 유지해오고 있다.
콜총리가 94년 임기를 마치면 지난 49년부터 63년까지 재임한 아데나워총리 다음으로 장수기록이 된다. 그러나 이미 94년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 콜총리가 다시 집권하게 되면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콜총리 집권기간동안 정말로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독일이 통일됐고 이를 계기로 동서냉전체제가 붕괴했다. 소련이 해체됐고 유럽은 통합돼 가고 있다.
그가 상대하던 인물들도 국내·외적으로 대부분 바뀌었다.
독일 내부적으로는 그의 정적 1호였던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전 바이에른주지사가 88년 사망했고 오늘의 콜이 있게 해준 겐셔 전 외무장관도 지난 5월 사임했다. 그밖에 많은 정치인들이 자의·타의로 그의 곁을 떠났다. 국제적으론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과 대처 전 영국총리,그리고 독일통일의 은인인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 등이 그의 재임기간중 권좌를 떠난 주요 지도자들이다.
콜총리의 집권 10년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동안 독일사람들을 웃겼고,놀라게 했으며 이제는 화나게 하고 있다.
우선 그는 육중한 체구와 서양배를 닮은 용모,그리고 영어는 물론 「독일어도 잘 못하는」혀짧은 발음 등으로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웃음거리를 제공했다. 그에 관한 농담집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돼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러나 콜총리의 진면목은 독일통일을 전후해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때는 정말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그도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처음엔 통일을 위한 10개항의 계획을 발표하는 등 여전히 물정모르는 소리를 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은 그는 야당이나 경제전문가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과감한 추진력으로 통일을 밀어 붙였다. 물론 독일통일의 외부문제는 겐셔라는 탁월한 외교가의 힘을 빌려 해결했다. 특히 독일통일의 관건이었던 소련의 승인은 경제지원이란 막강한 카드를 들고 그가 직접 코카서스의 산장으로 고르바초프를 찾아가 담판짓기도 했다.
동쪽 주민들에게는 화폐를 1대 1로 교환해 주는 등 경제적 번영을 약속,90년 3월 동독총선을 기민당의 승리로 이끌어 통일시기를 앞당겼다.
그러나 이도 잠시 졸속통일에 대한 대가는 금방 나타나 그에 대한 원망이 되살아났다.
세금인상을 안하겠다던 선거공약은 공약이 돼버렸고 동쪽은 물론 서쪽도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기민·기사당에 대한 인기는 지난 83년의 48.8%에서 34%로 곤두박질 쳤다. 이 와중에 극우파들은 준동하고 있고 통일당시 화폐를 1대 1로 교환해준 유산인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는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등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사민당과의 대연정설,기민당 내부의 쿠데타설 등이 꼬리무는 등 가뜩이나 불편한 그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하고 있다. 요즘 콜총리는 권불십년이란 말의 의미를 곱씹고 있는지도 모른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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