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이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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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중에 대법원장까지 지낸 한 원로법조인은 해방후 초창기의 법관시절을 회고하면서 당시 법관에 대한 급여는 고작 쌀 서너말 값에 불과해 하루 세끼 때우는 일을 걱정해야 했다고 털어놓은 일이 있다. 그런 형편 속에서도 상당수의 법관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공정한 재판에 힘을 쏟았지만 어쩐 일인지 일부 법관들은 호화와 사치를 즐겼다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법관도 인간이기 때문에 식생활이 가장 긴급한 문제였지만 판사실에서의 화제는 이와는 동떨어진 주색잡기가 주종을 이루었던 것은 기이한 현상이었다…. 일부 법관중에는 멋쟁이 빛깔의 마카오 양복지로 산뜻하게 양복을 지어 입고 구두도 엄청난 고가의 것을 신고 다니기도 하여 주변 없는 법관들을 몹시 놀라게 하였다…. 저 사람들은 어디서 돈이 나서 저렇게 호사를 하고 다니나 좋지 못한 추측들을 했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 법조인의 표현대로 「사람 나름」이겠지만 그같은 현상은 오늘날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법관도 사람인 이상 먹고 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더 잘 살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법부가 무너지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보편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법관이 사소한 개인적 삶에 얽매여 본분을 잊는 것만큼 위험하고 서글픈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나 검사가 되는 것을 가장 큰 「출세」의 하나로 치부해 왔다. 그것은 이른바 「마담뚜」로 불리는 중매쟁이들이 사법시험 출신을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고 성사되는 경우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사례를 받는 관례로서 잘 입증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사법시험 합격을 「힘+알파」로 생각하는 일반적 풍토 탓일게다.
그렇다면 최근 젊은 판사들이 법복을 벗어던지고 변호사 등으로 전직하는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법조계에서는 「힘든 일 기피,경제적 실리추구 풍조」가 확산돼 가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데,법관을 지망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갖는다면 앞으로 사법부의 보루는 누가 지킬 것인지 안타깝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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