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 이석채예산실장(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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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년 예산 「팽창」 아닙니다”/세입추계에 맞게 늘린 것일뿐/사회간접자본 확충이 급선무
내년도 예산편성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예산규모는 이제 4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커졌지만 달라는 곳,쓸 곳은 많고 들어올 돈은 한정되어 있어 살림꾸리기는 여느 가계나 다름없이 빡빡하다. 예산평가작업의 실무 총책임자인 경제기획원 이석채예산실장을 만나봤다.
­올해 새로 예산실장에 부임하셨는데 내년 예산을 짜면서 어떤 것이 가장 힘드셨습니까.
▲안정기조를 위해 재정규모를 긴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과 국가발전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위해서는 재정의 역할이 어느때보다도 중요하다는 두가지 상반된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가장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내년 예산이 그런 상충된 목표를 어느 정도 조화시켰다고 보십니까.
▲일반적으로 지난 84년 동결예산편성 때가 가장 어려웠던 때로 거론됩니다만 당시에는 인건비·추곡가동결 등 큰 줄기는 정해져 있어 각 부문을 줄이기만 하면 됐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복지수요는 그대로 두고 사회간접자본 등 국가발전을 위한 투자는 늘려야 하는 등 서로 상충되는 요구를 조화시켜 나가야 돼 더욱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간 누적돼온 재정구조상의 문제,기존 부처의 반발 등으로 사실 도저히 조화를 시키기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같은 구조적 어려움이 어디에서 파생됐다고 보십니까.
▲민주화와 소득상승 등에 따라 각종 복지대책과 소득보상적 지출,지방정부에 대한 지원 등이 크게 늘었습니다. 물론 그 당위성에는 이론을 달 수 없습니다만 수조원이나 되는 그같은 소요경비를 어떻게 뒷받침할 것이냐하는 작업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과거 그같은 소요만 충당할 때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인력·과학기술 지원 등 국가경쟁력 배양을 위한 투자가 다시 예전의 「개발 연대」 만큼이나 강조되는 현시점에 와서는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겁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부분을 줄이든지,아니면 재원마련방안이 공론화돼야 하는데 어느 쪽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한계가 있었겠습니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정부 나름대로 중점을 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안정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농·어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투자나 사회간접자본의 확대,사람을 키우고 과학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쪽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청사 신축이라든지,공무원들의 일반 행정비·행사비 등 경제사업비를 줄이고 일반사업비중에서도 당장 늘리지 않아도 경쟁력 확보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만한 것들은 뒤로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각 부처의 이런 예산들을 자르면서 어려움도 많았고 가까운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내 심정은 울고만 싶다」고도 했습니다만 이 부분을 설명하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다만 우선순위를 매기기는 어렵지만 국민적 컨센서스가 경쟁력을 강화해 21세기에 선진국이 되자는 거 아니냐,그러니 다른쪽이 어려워도 참아야 하지 않느냐고 설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부가 당초 내년예산을 경상성장률 수준인 13%선으로 짜겠다고 하다 14.6%로 늘린데 대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긴축의지의 퇴색 등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만.
▲당초 세입을 13%로 봤던 것이 재무부의 추계로 14.6%가 나와 이에 맞춘것 뿐입니다. 일반회계만 보면 경상성장률보다 조금 높습니다만 이는 통계상 오차정도의 차이고 또 재특까지 합친 총 세출은 증가율이 11.7%로 경상성장률보다 낮아 팽창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또 재정규모가 총수요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와 함께 국가기능·물가안정을 위해 해야할 것은 해야합니다. 재정을 죄어 예컨대 도로·물 공급 등이 제대로 안되면 결국 이는 물가에 반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류나 자동차관련 세금을 모아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쓰는 목적세를 만든다는 발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데요.
▲이는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자동차보유는 폭발적으로 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국토의 생산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송부문의 투자확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문제가 터져야 서두르는 식입니다만 자동차의 급증은 지금은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이 될 것이며 이 문제는 터진 후에 대처하려 해서는 이미 늦게 됩니다. 저는 정말 우리가 맞이하려는 이 새로운 도전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경고하고 싶습니다. 목적세 신설이 새로운 국민부담의 증가도 아니며,또 지방재정 약화라는 우려는 지방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돈으로 주는 대신 사업으로 해주겠다는 것인 만큼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민주주의의 의사결정은 어떤 것이 불만을 최소화하느냐,또는 문제를 덜 일으키느냐에 따라 이뤄지고 예산편성이 기본적으로 정치적 프로세스에 의해 결정돼 당장의 중요성에 따라 돈이 가게 돼 있습니다만 당장 느껴지지 않아도 장차 심각해질 문제에 제도적으로 돈이 들어가게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글=박태욱기자 사진="주기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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