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임원 최고 20%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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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실적이 좋지 않은 계열사를 중심으로 임원을 줄이고, 원가 절감 대책을 세우는 등 그룹 차원에서 허리띠를 조일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그룹 전략기획실이 각 계열사에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임원 감원 규모나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각 계열사들이 실적과 경영 전망에 맞춰 스스로 계획을 세워 추진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삼성은 그러나 평직원은 감축하지 않을 방침이다.

◇임원을 줄이는 대신 신규 채용은 늘린다=일부 계열사는 7월 1일자로 임원 감축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내년 초까지 계열사별로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그룹 임원의 10∼20%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 수는 현재 삼성전자 800여 명 등 그룹 전체에 총 1700여 명이 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인재 확보가 필요한 만큼 임원을 줄이더라도 신규 채용은 가능한 한 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삼성의 임원 수는 현대ㆍ기아차그룹(300여 명), LG그룹(600여 명), SK그룹(300여 명) 등 주요 그룹보다 훨씬 많다. 삼성은 올 초 인사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472명을 신규로 임원 발령을 냈었다.

삼성은 또 전무급이 타는 차량의 운전 기사를 없애고, 원재료 구입비도 줄이기로 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부품 구입처를 다변화해 효과를 거두고 있다. LCD총괄은 일부 부품을 같은 회사인 시스템LSI사업부에서 전량 조달하다가 외부 업체인 매그나칩반도체에서 사기도 한다. 삼성 계열사들은 또 외부 단체 행사의 신규 협찬을 하지 않기로 했으며 사무실 운영비를 감축하는 아이디어도 짜내고 있다. 하지만 원가 절감을 추진하더라도 설비와 연구개발(R&D) 투자는 줄이지 않고 예정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신사옥 이전에 맞춘 분위기 쇄신용?=이번 조치는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이 1조1800억원으로, 2003년 2분기(1조1600억원)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촉발됐다. 따라서 침체된 기업 분위기를 다잡고 그룹을 확실한 성장 가도에 다시 올려놓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분석이다. 즉, 구성원에게 강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조치다. 또 사옥을 서울 태평로 일대에서 서초동 신사옥으로 옮기는 때와 맞물린다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 쇄신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새 사옥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자는 뜻에서 계열사별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얘기다. 삼성 계열사는 다음달 말부터 내년 5월 말까지 1년에 걸쳐 서초동 강남역의 ‘삼성 서초 타운’ 3개 동(전체 면적 38만9400㎡ㆍ약 11만8000평)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당분간 유가 불안, 원화 강세, 엔저 현상이 지속될 것에 대비해 체질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가격 회복이 관건=삼성이 ‘분위기 다잡기’ 차원이라고는 해도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경우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다른 기업은 물론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불가피하다. 국내 대표기업이라는 삼성의 상징성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 주요 원인인 반도체 가격 약세가 길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512메가 DDR2 D램 가격은 23일 현재 1.7달러까지 떨어졌다. 올 초에 비해 4분의 1 수준이며 손익분기점인 1.5달러대에 근접했다. 낸드 플래시도 지난 연말과 비교하면 절반 가격이다.

반도체 업계는 당초 하반기 이후에는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진정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최근까지 급락세가 멈추지 않자 극심한 공급과잉 상태가 해소되기 전까지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삼성이 구조조정을 통해 ‘장기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빅3가 중견 업체의 인수합병을 추진해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커졌다.

권혁주ㆍ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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