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칸의 시선을 사로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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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밀양'(密陽.영어 제목 Secret Sunshine)이 그 '비밀스러운 빛'을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드러냈다. 김기덕 감독의 '숨'과 함께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밀양'은 24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공식 상영됐다.

'밀양'은 혼자 아들을 키우게 된 신애(전도연)가 새 출발을 위해 죽은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가지만, 비극적인 사고로 아들마저 잃고 처절한 비탄에 빠지는 이야기다. 이후 기독교적 구원에 빠져드는 듯했던 신애가 새로운 고통과 갈등을 겪는 과정을 통해 용서와 구원, 나아가 인생의 숨은 뜻을 모색하는 작품이다. 송강호는 신애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도와주는 카센터 사장 종찬을 연기했다.

이 감독은 2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칫 반기독교적으로 오해될 수 있는 요소에 대해 "나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 믿건 믿지 않건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구 태생인 그는 경남 밀양을 배경으로 택한 것에 대해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도시인데, 그런 평범한 도시에 시적인 이름이 있는 것이 어려서부터 궁금했다"며 "평범한 도시를 무대로 '시크릿 선샤인'을 찾는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을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제6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밀양'의 이창동 감독과 주연배우 전도연·송강호(왼쪽부터)가 24일 오후 영화제 주상영관인 뤼미에르 대극장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칸 AFP=연합뉴스]

◆ 한국 영화의 창조성='밀양'의 시작과 끝은 햇살이 비추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감독은 "첫 장면은 신애 아들의 시점에서 하늘을 본 것이고, 마지막 장면은 누추한 땅에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이라며 "우리가 사는 이유가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다는 단순한 의미를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감독은 올해 경쟁부문에 한국 영화 2편이 초청된 것에 대해 "영화의 국적과 언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든 이들의 창조성이 보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쟁부문 첫 진출에 대해선 "기쁘고 영광스럽다"며 "학창 시절부터 경쟁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결과에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화부 장관 재직 경험을 묻는 질문도 나왔다. 감독은 "장관을 할 때는 영화 만드는 일을 까맣게 잊었고, 지금은 공직에 관한 것을 까맣게 잊었다.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함께 경쟁부문에 진출한 김기덕 감독의 '숨'을 봤느냐는 질문에는 "후반 작업에 바빴던 데다 상영관이 많지 않아 대단히 안타깝게도 못 봤다"며 "한국 관객들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전도연의 재발견=주연배우 전도연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그는 혼신을 다한 연기에 대해 "보신 분들이 저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같다"며 "10편의 영화를 한 제가 다시 신인이 된 듯해 기쁘다"고 말했다. 한 홍콩 취재진은 전도연이 이 영화의 쉽지 않은 연기와 결혼 준비를 병행한 것에 관심을 드러냈다.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부터 함께 일했던 송강호는 "종찬은 한국 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물이라 쉽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이날 회견은 미국 링컨센터.뉴욕영화제 등의 프로그래머인 리처드 페나가 진행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23일 밤 두 차례 열린 기자시사회의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외국 기자들은 특히 주연배우 전도연.송강호의 연기를 높이 평가했다. 아르헨티나 기자 모테아구도는 "'오아시스'와 '박하사탕'도 봤지만 이창동은 좋은 감독이다. 여배우(전도연)의 연기도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스위스 기자 파스칼 가비에는 "매우 아름답고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여배우가 훌륭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 지식인 감독의 영화=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4일자에서 '믿음을 향한 비밀스럽고 두려운 여정'이란 제목으로 문화면 절반 정도를 할애해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밀양'은 믿음이 어떻게 삶으로 들어갔다 사라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며 "밀도 있게 쓰인 각본에서 이야기가 계속해서 꽃을 피운다"고 평했다. 전도연.송강호에 대해선 "이야기 속으로 녹아든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고 썼다. 이 감독에 대해선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고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주는 감독"이라며 "만든 영화는 네 편밖에 안 되지만 일상생활에서 숨겨진 의미를 탐구하는 지식인으로서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현지 평론가 중에 이날 먼저 별점을 내놓은 프랑스 잡지 '포지티프'의 비평가는 평점 4점 만점에 4점을 매겼다. 수상 결과는 27일 폐막식에서 발표된다.

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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