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침묵 시위' … "시험날만이라도 조용히" 집회신고 뒤 하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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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학부모들이 집회신고를 하겠습니까. 시험 치르는 날만이라도 조용했으면 해서요."

8일 오전 9시50분쯤 경기도 과천경찰서 민원실. 과천 중앙고 학교운영위원장인 강경숙(46)씨가 문을 열고 들어와 집회신고서를 접수시켰다. 강씨는 하루 전 경찰서를 찾아 집회신고서 작성 방법과 절차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강씨는 이날 자신을 포함해 학부모 22명의 명의로 집회신고서를 제출했다. 신고서에 제시한 집회 장소는 정부과천청사 앞 빈 터. 날짜는 다음달 7일과 13일이었다. 이날은 과천 중앙고 시험날이다.

7일은 3학년이 대입 수능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이고, 13일은 1학년과 2학년이 전국연합학력고사를 치를 예정이다. 이들이 집회신고를 낸 것은 집회 장소를 선점해 다른 이익단체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 학교는 연중 집회가 끊이지 않는 정부과천청사 앞 빈 터와 왕복 4차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과천청사 앞 빈 터에서는 지난해 모두 75건의 시위가 있었다"며 "아이들이 닷새에 한 번꼴로 시위 소음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의료법 개정 등으로 시위 규모가 커진 올해 들어서는 29건의 집회에 시위 참여 인원이 지난 한 해의 두 배에 이르는 8만5000명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난 1일부터 나흘간 치러진 중간고사 때 집회소음으로 시험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아이들의 하소연이 잇따랐다"며 "자녀들이 시험만이라도 조용하게 볼 수 있도록 집회신고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집회 신고일에 학부모들이 모여 침묵 시위를 할 예정"이라며 "소음 시위에 대한 항의 표시이자 아이들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했다.

?소음제한 어떻게 하나=현행규정상 주거지역과 학교의 경우 65dB(데시벨, 야간 60dB), 기타 지역은 80dB(야간 70dB)로 소음을 제한하고 있다. 65dB은 시끄러운 휴대전화 벨소리를 1m 옆에서 듣는 정도이며, 60dB은 1m 거리에서 들리는 보통의 대화 소리, 80dB은 지하철이 승강장에 진입한 직후, 70dB은 1m 옆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유선전화 벨소리 정도의 소음이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시 확성기 소리 등이 소음기준을 넘을 경우 확성기 사용 중지 등의 명령을 내리며, 명령을 위반할 때는 6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설명했다.

과천 중앙고 김인관 교무부장은 "자체 조사 결과 학교에 도달하는 집회 소음이 기준에는 못 미친다"며 "그러나 집회가 있는 날에는 계속되는 확성기 소리 등으로 학생이나 교사들이 느끼는 체감소음은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과천청사와 가까운 3학년 교실은 교사들이 마이크를 잡고 수업을 진행할 정도로 소음 피해가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과천=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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