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자코너] 이해하기 어려운 외래어·한자어 한국인끼리 말할 때도 써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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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텔레비전 방송은 잠깐 떴다 지는 수많은 유행어들의 고향이다. 예전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애기야, 가자'부터 요즘 유행하는 '개미 퍼먹어'까지 낯선 말들이 방송을 탄 뒤 삽시간에 전국에 퍼졌다. 방송은 이미 사람의 언어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방송은 종종 언어 파괴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간지난다'(폼난다는 뜻)처럼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사용한다든가, '그러면 안 되요'처럼 잘못된 국어 표기를 그대로 내보낸다든가, '구라' 같은 비속어를 여과 없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방송이 틀린 우리말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과연 방송만 우리말 파괴의 주범일까. 앞장서서 방송을 비판하는 학계도 알고 보면 문제가 많다. 한자어로 도배된 법학 책을 처음 보는 사람은 '이게 우리말 책이야?' 하고 입을 딱 벌리게 된다. '위법이다'라고 하면 될 것을 '위법이라 아니 할 수 없다'고 배배 꼬는 판결문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연구실'을 굳이 '랩'이라 표현하고 어려운 의학 용어를 외국어 그대로 써 가며 사용할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학문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끼리 말할 때도 전문가의 '권위'를 내세우려 영어를 섞어 쓰거나, '위엄'이 있어야 한다며 한자어를 섞어 쓰는 태도다.

방송의 비속어 사용만큼이나 학자나 전문가들의 외국어.한자 남용도 자제돼야 한다.

최은별 학생기자 (강원 민족사관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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