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보노보'에게 섹스는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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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늘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며 어떤 동물은 숭배하고, 어떤 동물은 무조건 혐오한다. 인간에게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보노보 역시 이런 편견의 희생양이었다. '음탕한 호색가''매춘부'라는 별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인간과 유전자를 98%나 공유하고 있는 보노보는 그 어떤 영장류보다 인간과 비슷하다.

그러나 인간과의 유사성은 보노보에 대한 편견을 더욱 부추겼다. '도덕적'인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암수만 짝을 이루는 게 아니라 수컷과 수컷, 암컷과 암컷, 수컷과 어린 개체, 암컷과 어린 개체 등 가능한 모든 짝과 어울려 섹스를 하는 보노보는 성적으로 문란한 동물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서구 학계를 '보노보 열광'에 휩싸이게 한 보노보 연구 종합보고서인 이 책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노보의 성에 접근하고 있다. 1929년 보노보가 새로운 종으로 인정받은 이후 보노보 서식지인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의 로마코와 왐바 연구기지에서 나온 결과물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한 저자는 당초 섹스 문제보다 공동체 구성원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 섹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연구 결과 보노보가 사회를 유지하는 화해 방법, 즉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성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먹이를 사이에 둔 긴장 상황이나 싸움 후 화해할 때 보노보는 어김없이 섹스를 동원한다. 성이 이런 역할을 하는 점을 고려하면 다양한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책은 이처럼 인간의 잣대를 들이댔을 때의 오류를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 종에 대한 기존의 진화론을 재고하도록 도와준다. 그간 인류 진화의 표본으로 침팬지를 선택함으로써 수컷 지배가 자연스러운 상태였지만, 암컷 중심적이고 평화로운 영장류의 등장으로 인류학계와 사회학계 등에 전혀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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