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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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프랑스인들에게 베트남은 어떤 존재인가. 과거 식민지로서 민족적 우월감을 심어준 종속국이자 디엔비엔푸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쓰라린 패배의 상반된 두 모습,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레지 바르니에 감독은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앞쪽에 비중을 두면서도 피해자의 상처를 공유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60년대의 요정 카트린 드뇌브가 연기한 「기른 정의 모성애」를 통해 인종을 초월한 프랑스인의 휴매니티를 강조하면서도 전설적인 존재가 된 베트남의 「붉은 공주」(카미유)를 더욱 부각함으로써 그 휴매니티를 희석시킨 점이 이를 입증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종속관계가아니라 수평적인 모녀관계로 승화시키려한 의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따라서 흔히 강자가 갖게 마련인 위선적인 베풂이나 편견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프랑스가 지배하는 인도차이나에서 고무공장을 경영하는 금발의 독신녀 엘리안의 양녀가 된 베트남의 마지막 공주 카미유(린 당 팜)가 양모앞에 나타난 프랑스 청년장교(뱅상페레)를 사랑하게 되면서 짓밟힌 조국과 민중에 대한 자각을 갖게 되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영화가 단순히 「옛시절을 그리는 감상적 향수의 소산」이 아님을 알수 있다.
왕녀가 의식화되는 과정에서 체험한 프랑스군의 횡포와 그녀를 사랑한 점령군 장교의 순교적 결말, 그리고 양녀를 잃은 대신 국경과 이념을 뛰어넘어 그의 핏줄을 얻게되는 인간애에 무게를 실은 연출자의 양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정직하게 핵심(주제)에 접근했느냐 하는 데에있다.
이런 점에서 『인도차이나』에 투영된 역사적 진술은 그나름의 의미와 설득력을 지닌다고할수 있다.
그러나 설명적인 극의 전개로 인해 오히려 속도감을 압박, 전반적으로 영화를 방만하게 만들고만 결함이 없지 않다.
김종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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