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매장 대형서점 급증|작은 책방 "설 땅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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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중소서점의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해방이후 최악이라는 출판계 불황, 텔리비전과 비디오 쪽으로 독서인구 이동, 대형서점의 잇따른 개장, 각종 연금매장의 할인판매 등으로 사면초가다.
이중 중소서점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연금매장·공제조합·편의점 등에서 무분별하게 벌이고 있는 할인판매.
각종 연금매장과 공제조합들은 모든 고객에게 10∼15% 할인한 가격으로 책을 판매, 실시 16년째를 맞아 정착 단계에 접어든 도서 정가 판매제도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각종 연금매장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공무원 또는 특정기관의 종사자들에게 질좋은 상품을 보다 싼값에 공급하려는 복지차원에서 생겨났으나 차츰 종합슈퍼마킷 형태로 바뀌면서 일반인들에게까지 할인판매를 확대, 문제를 낳고 있다.
현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도서 등 각종 상품을 할인판매하는 연금매장 및 유사 연금매장의 수는 서울시내만도 4백여 곳에 이른다. 전국의 서점이 6천여 곳인 점을 감안할 때 결코 만만찮은 숫자다.
현행법상 일반인들에게까지 책을 할인판매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같은 할인매장의 수가 급증하는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교보문고·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학습참고서 고객을 대거 빼앗아 가는 것도 중소서점에는 적지않은 타격이다. 중소서점들은 요즘 참고서 판매로 간신히 연명하는 실정이다.
대형서점의 참고서 판매비중은 15%선이지만 중소서점은 60∼70%로 여기에 목을 매고 있다고 할만하다.
이에따라 전국서점조합연합회(회장 김석용) 지역대표 90여명은 22일 오후 2시 연합회 사무실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각 출판사들이 할인매장에 도서공급을 중단할 것 ▲매장넓이 1천평 이상의 초대형서점은 참고서류 판매를 스스로 제한할 것 ▲서점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 보호해줄 것 ▲출판·서점업계가 개방화시대를 이겨내기 위해 상부상조할 것 등 4개항을 당국·출판계·대형서점측에 호소했다.
이에 대해 대형서점측은 참고서를 취급하지 않을 경우 다른 분야 도서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문화부도 중소서점의 위기상황을 뒤늦게 알고 지난달 25일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연금매장 등에서 할인판매를 하는 사례가 없도록 귀 산하 출판사에 지도계몽을 실시하여 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보냈다.
현행법상 할인매장을 직접 규제할 방법이 없어 책 공급을 차단하는 간접규제방식을 취한 셈이나 실효는 의문이다.
김석용 서련회장은 품목제한·매장넓이 제한·시간제한 등의 양보를 통해 대형서점이 중소서점과 공존하는 일본의 성공적인 사례를 예로 들면서 『우리들의 최소한의 요구마저 관철되지 않는다면 「장님 제 닭 잡아먹기」식의 할인판매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대형서점들의 존립도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정가제도의 붕괴를 가져와 우리 출판문화는 16년전 수준으로 후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문을 닫은 서점이 90년 1백여 곳에서 작년에는 2백50여 곳으로 늘어났다. 전통깊은 양우당이 스포츠용품점으로 바뀐 종로 일대에는 10여개의 서점이 있었으나 지금은 종로서적과 삼일서적 두곳만 남았다.
중소서점의 퇴조를 세계적 추세나 시대의 흐름으로 치부해 방치한다면 가뜩이나 빈약한 우리 문화현실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
대형서점과 중소서점의 유기적인 발전과 도서 정가판매제도의 유지를 통해 출판 개방화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도록 당국·출판계·서점계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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