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유력지 키르쿠크 르포] "도우러 온다면 한국軍 대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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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은 중립국가다. 한국군이 오면 환영받을 것이다."

18일 오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동북부로 2백80km 떨어진 키르쿠크. '이라크 투르코맨 전선' 본부에서 만난 수브히 사비르(71) 회장은 기자를 환하게 반겼다. 인구 95만명의 키르쿠크는 지금 한국인의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다. 한국군의 파병 지역으로 가장 유력한 곳이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눈으로 보자면 키르쿠크는 '저항의 도시'다. 아랍계가 아니라 쿠르드족과 터키계 소수민족인 투르크멘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후세인은 소수민족을 냉대하거나 탄압했다.

"후세인이 붙잡힌 날 여기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파티를 열었다. 후세인은 이미 끝난 인물이지만 그가 붙잡혀 우리는 완전히 해방됐다." 사비르는 감격에 겨워 그날을 회고했다. "한국군에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학교.공공건물 등을 복구하는 데 집중적인 지원을 해달라. 공사현장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을 누가 미워하겠는가"라고 답했다.

사비르뿐 아니다. 대부분의 시민은 한국군 파병 가능성을 알고 있었고, 한국군을 환영한다고 했다. 반대한다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한국군을 비롯해 우리를 도우려는 모든 외국군을 환영한다." 장난감 가게문을 열고 있던 가지 할아버지는 "치안을 회복하고 재건을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출근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던 자이납 간호사는 "빨리 와서 (후세인의) 바트당이 다시 결집하는 것을 막아 달라. 전기.휘발유도 해결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국군 파병이 가장 유력한 곳이기에 기자는 치안 문제가 제일 걱정됐다. 시민들은 환영한다고 하지만 저항세력이 한국군을 공격하지나 않을까 우려됐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치안상태를 물었다. 구둣방 주인 알리는 "우려할 만한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있지 않아 이제는 마음 놓고 밤에도 거리를 다닌다"고 말했다.

미군 중에서는 173공정여단이 키르쿠크를 맡고 있다. 가끔 미군에 대한 공격이 발생하지만 이라크 다른 지역에 비해 치안은 상대적으로 잘 확보돼 있다. 우선 후세인 추종세력이 거의 없다. 이라크의 거대 유전이 위치하고 있는 키르쿠크는 후세인 정권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던 곳이다.

이곳은 준자치 지역인 쿠르드 지역과 접해 있고 쿠르드족 및 투르크멘족이 다수파이기 때문에 후세인 추종자들이 활동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도시 외곽에서는 저항활동이 지속되고 유전 지역과 송유관이 여러 차례 공격을 당했지만 미군에 대한 공격은 미약했다. 쿠르드족.투르크멘족, 그리고 아랍인들 간 민족분쟁 가능성도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 민족 간 화합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기자는 경찰청을 방문해 투르한 유수프(39) 치안국장을 만났다. 그는 치안상황에 대해 "아주 양호하다. 최근 인명 피해도 거의 없고 범죄도 상당히 줄었다"고 소개했다.

유수프 국장은 그러나 한국군의 역할 가운데 '치안지원'도 강조했다. 그는 "전기.상수도 등 공공시설이 상당히 발전해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가 이곳에 와 전후 복구사업을 지원해 준다면 우리는 감사할 따름"이라고 하면서도 "경찰 훈련 및 장비 지원 등 치안 유지에도 참여해 주길 바란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현재 키르쿠크의 치안은 주로 이라크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미군은 경찰을 훈련하고 장비를 지원해 주는 제2선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유수프 국장의 주문은 한국도 이런 정도의 '2선'역할은 해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들렸다.

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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