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과 이형종의 눈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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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15면

지난주 ‘감동의 투혼’ ‘눈물의 역투’로 이름 붙여진 이형종(서울고·사진) 투수가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 3일 광주일고와 서울고의 제41회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전 9회 말에 눈물을 흘리며 마운드를 지켰다. 역전패의 아쉬운 결과가 그에게 주어졌지만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눈물이 그 최선을 대변해준다.

그렇게 5월의 동대문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날 동대문에 갔다. 명승부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을 열지 못했다. 환호하는 광주일고 선수들 틈새로 그저 무릎 꿇은 이형종을 한동안 보고 있었다. 마음은 안타까웠고 가슴은 울렁거렸다. 그리고 기억은 31년 전 5월을 더듬고 있었다. 울고 있는 이형종을 보면서 한 명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김시진(현대감독)이었다.

1976년 5월이다. 제10회 대통령배 결승전은 대구상고-군산상고의 맞대결로 펼쳐졌다. 김시진의 대구상고는 김용남의 군산상고와 숨 막히는 투수전을 펼쳤다. 당시 경남고의 최동원과 함께 빛나는 고교마운드의 트로이카로 꼽히던 그들이었다. 그날 승부는 어쩌면 이번 결승전(10-9)보다 더 짜릿한 1점차 승부(1-0)였다.

8회까지 0의 행진이 이어졌다. 경기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토너먼트 대회 내내 마운드를 책임졌던 이형종이 그랬던 것처럼 김시진도 지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운드의 주인이었다. 당당했다. 김시진은 9회 초 1사 후 아쉬운 3루타를 내줬다. 그날 군산상고가 때린 겨우 두 번째 안타였다. 실점의 위기. 스퀴즈번트를 의식한 김시진은 공을 뺐고, 포수 이만수(맞다 ‘그’ 이만수다)는 그 공을 잡지 못했다. 1-0. 결승점이었다. 그때 허탈한 듯 축 처진 어깨로 마운드에 서 있던 김시진. 그의 눈에서 이슬을 본 기억이 있다.

김시진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그 순간을 TV로 보았다고 했다. 이형종을 보면서 고3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고도 했다. 자연스럽게 눈물에 대해 얘기가 오고갔다. 김 감독도 그때 펑펑 울었다고 했다. “겨우내 합숙하면서 준비한 대회 아닙니까. 그 대회 결승전, 그것도 9회에 무너지는 아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 주르륵 눈물이 흐르고, 참을 수가 없었죠. 그때 우수투수상을 받았지만 시상식 순간에 곧바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벤치에서 울고 있었죠….”

그는 프로야구 삼성 후배인 서울고 진동한 투수코치에게 전화를 걸까 망설였다며 덧붙였다. “그러나 그때의 눈물은 좌절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픔을 씻어주고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들어줬죠. 대학에서, 대표팀에서, 치열한 프로의 경쟁에서 나를 지켜준 밑거름이 됐습니다. 형종이에게 당부하고 싶어요. 앞으로 더 많은 시련의 시간이 찾아오고, 더 힘든 승부의 순간을 맞이할 겁니다. 그날의 눈물을 가슴에 담아두면 그 시련을 이겨내는 밑거름이 되어줄 겁니다.”

31년 전 5월 동대문에서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그 김시진은 프로야구에서 124승(역대 7위)이나 올렸고 지금 대한민국에 8명밖에 없는 프로야구 감독이 됐다. 그 시절 무릎을 꿇고 울었지만 그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일어서 프로구단을 이끄는 대장이 됐다. 때로 눈물은 이처럼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보물이 된
다.

네이버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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