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겐 나이가 없죠”-원로 배우 황정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젊은 세대에게 배우 황정순의 이름은 낯설다. 그러나 올드 팬의 뇌리엔 그는 영원한 한국의 어머니 상으로 각인돼 있다.
황정순씨(67)는 예상대로 옅은 분홍색 치마·저고리에 흰 고무신 차림이었다.
30대 중반 이상이면 누구나 영화·TV드라마에서 수없이 보았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연기생활 반세기. 세월은 마침내 그에게 연기 속의 그와 실제의 그를 완전치 일치시키는 최상의 선물을 준 듯하다. 연기자로서는 지선의 경지가 아닐까.
『배우에게는 나이가 없어요. 극중에서 50이면 실제로 50이고 80세 역을 맡으면 80으로 바뀌고…. 배우가 자기 나이를 의식하고 거기에 맞추다보면 좋은 연기가 안나와요. 물론 지금 내가 처녀 역을 할 수는 없지만….』
나이를 묻는 질문을 부질없게 했다.
황씨는 북한산 어귀 삼청동 2층 양옥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몸소 대학공부 뒷바라지를 한 외손녀 희재(27)·친손녀 진영(30)양으로부터 이제는 거꾸로 효도를 받으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슬하의 3남매가 미국·부산 등지에서 살기 때문에 손녀들의 대학생활을 황씨가 돌봤다.
손녀들 외에 그는 「예쁜이」 「삼삼이」 「신선이」등으로 불리는 치와와·진돗개를 가족으로 데리고 산다. 얼마 전 치와와 두 마리가 각각 새끼 두 마리, 세 마리를 낳아 30분마다 강아지에게 우유를 주는 것도 그의 중요한 일과가 됐다.
황씨는 보통 새벽4시면 일어나 손녀들로부터 안마를 받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노인의 일상이 그렇듯 조금은 무료하게 오전에는 화초도 가꾸고 세간살이도 옮겨보다 오후엔 찾아오는 손님을 만나고 가끔 외출도 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배우란 직업에는 일반인들이 상상 못하는 온갖 애환이 서려있지요. 또 내 개인적으로도 억척스레 살아낸 것 같고. 그래 이제는 뭐든지 척 보면 알 듯해요. 편해요.』
마음은 그렇더라도 그의 몸은 지난 겨우내, 그리고 지난달 중순까지 큰 고생을 겪었다. 5년 전부터 살금살금 찾아온 백내장이 지난해 겨울 초입부터 크게 악화돼 눈앞이 온통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수술을 받기 직전에는 바로 코앞의 물건도 분간하지 못하고 실명상태로까지 빠져버렸다. 다행히 수술결과가 좋고 회 올 초 백내장 때문에 눈앞이 짙은 안개 속 같을 때 그는 놀랍게도 영화 『마농의 샘』관람(!)을 했다.
그는 캄캄한 극장 안에서 희뿌옇게 뒤엉킨 화면을 보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겐 진짜로 영화를 보는 체 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볼 수 없는 상태였음은 그 자신이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한국영화라면 대사라도 듣고 대충 이해했다손 치겠지만 『마농의 샘』은 외국영화였다.
그런데도 그는 왜 극장을 찾아갔을까. 『아하, 그렇구나』 문득 한소리가 들렸다. 이 객석 저 무대, 스크린은 그가 평생을 걸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관객들과 만난 곳.
그러니 극장은 그의 기도원이자 도량이겠구나. 그는 영화를 전신으로 느꼈고 마음으로 봤던 것이다.
서로 다른 자리일지라도 누구든 한 우물을 파다 경지에 이르면 도란 일치점에 닿는다는데, 그는 연기를 통해 도를 체득했구나 싶었다.
『도는 무슨. 그냥 극장에 가고싶어 간거지. 그래도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편이지요. 연기생활을 오래할 수 있었고, 또 앞으로 할 자신이 드는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인 듯해요.』 그의 말대로 황씨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의 별명은 「탱크」, 또는 「불의 여인」이었다.
15세 때인 39년 경기도 시흥에서 막연히 배우의 꿈을 안고 홀로 상경, 이듬해 동양극장 연구생(심부름꾼)으로 들어간 그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해 『대지의 어머니』에서 상전의 아들을 낳고 그늘에서 살아가는 조선 말기 침모 역을 탁월치 연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후 『물레방아 도는데』 『신사임당』 『여인애사』 『유랑삼천리』 『시베리아 국화』등에서 유감없이 진면목을 발휘하고 50년부터 극단 「신협」에서 절정의 무대연기를 펼쳤다.
황씨는 이해랑·김동원씨를 상대로 『원술랑』 『뇌우』 『자명고』등 한국 연극 사에 길이 빛날 작품에 참여하고 60년대엔 무대·스크린을 함께 누비는 정상의 연기자로 군림했다.
이때 황씨의 억척스런 활동을 보고 연극배우 김동훈씨가 지은 별명이 「불의 여인」이며 「탱크」란 6·25전란 중 전선공연을 다니다 불은 별명인데, 역시 그의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그 동안 2백여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3백여편의 영화에 모습을 보였다.
『출연편수가 많은 게 자랑일수는 없고 너무 많은 것은 부끄럽다는 생각입니다. 하루에 5∼6번 겹치기 출연도 했으니. 그래서 내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영화는 1백 편쯤 될까요.』 그 내 것으로 그는 서른 번 이상의 주·조연상을 수상했다.
51년 의사 이영복씨와 결혼, 77년 사별한 황씨는 이제 남은 바람이 있다면 무대에 설 수 있는 건강이 유지되는 것, 또 언제일는지는 모르나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이라고 했다.
80년대 후반 들어서도 서울국제연극제(88년) 『산불』출연을 비롯, 지난해 TV드라마게임 『가물치』 에서 주연한 그이고 보면 그의 뜻대로 바람이 실현되리라. <이헌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