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사과상자’ 어디로 갔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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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03면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의 공소 유지에 수사팀이 온통 매달려 있다.”

김흥주 로비사건 뇌물 전달했다던 증인 진술 바꿔

3월 중순 ‘김흥주 정ㆍ관계 로비 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관계자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고충을 토로했다. “핵심 증인인 신상식 전 광주지원장이 진술을 뒤집고 있다”는 것이었다. 올 초 ‘김흥주 사건’은 연일 신문 지면을 오르내리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넉 달이 지난 지금 세인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공소장에 적힌 내용은 대충 이랬다.

‘2001년 2월 김흥주 삼주산업 회장은 골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하고자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이근영 당시 금감원장의 소개로 김중회 부원장을 만나 논의했고, 도움을 준 대가로 김 부원장에게 2억원이 든 사과상자 2개를 건넸다. 사과상자 전달은 신상식 전 금감원 광주지원장이 맡았다.’

김 부원장은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돈 심부름을 했다”는 신상식씨의 진술로 김 부원장은 기소됐다. 김흥주 사건에 관심을 갖고 취재해온 기자는 사과상자의 존재 여부를 따져보기로 했다. 신씨는 1월 중순 검찰에서 갑자기 진술을 번복했다. 이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얼마 전 공판에서 그 내용이 공개됐다.

3월 30일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 대법정. 김중회 부원장의 뇌물사건 4차 공판이 열렸다. 증인 신상식씨의 입에서 ‘폭탄진술’이 터져나왔다. 검사의 얼굴은 굳어졌고 방청객들은 술렁거렸다.

판사: 증인은 2억원이 든 사과상자를 김중회 부원장에게 배달한 사실이 있습니까?

신상식: 없습니다.

판사: 그럼 왜 그렇게 검찰에서 진술했나요.

신상식: 검찰의 회유와 강압적인 추궁이 있었고, 김흥주씨가 그렇게 진술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이후 4월 말까지 세 차례 더 공판이 열렸지만 사과상자의 존재를 둘러싼 공방은 가열됐다. 수사를 담당한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기자에게 “어떤 강압수사도 없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신씨가 김 부원장과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진술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신씨는 자신의 주장을 이렇게 부연 설명했다.

“내가 구속 기소된 이후 영등포구치소 목욕탕에서 김흥주씨를 만났다. 그는 ‘(사과상자 전달은) 사실이 아니지만 내가 진술한 대로 따라와 달라’고 했다.”

기자는 수사ㆍ공판 과정을 지켜보며 몇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사과상자에 담긴 2억원 출처의 신빙성이다. 김흥주씨는 2002년 초 자살한 감사원 K씨에게 부탁해 마련한 돈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K씨와 친했던 감사원 관계자는 “전세를 전전했던 K씨가 2000만원도 아니고 2억원이나 되는 큰돈을 며칠 내에 마련할 정도의 능력은 없었다. 김씨의 말은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또 하나 의문점은 돈 전달 과정이다. 김씨는 K씨가 2억원이 든 사과상자를 들고 와 자신이 없는 사이에 사무실 탁자 위에 두고 갔다고 주장한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2억원을 두고 가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지가 공판의 쟁점 중 하나다.

신상식씨의 한 측근은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검찰이 회유와 강압적 방법으로 허위 진술을 유도한 과정을 신씨가 상세하게 메모해 놓은 것으로 안다.”

익명을 요구한 김흥주씨의 한 측근은 “내가 알기로는 돈이 전달됐다면 다른 제3의 거물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신씨의 진술 번복을 반격할 물증을 내놓지 못하면 공소 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8차 공판은 오는 11일 열린다.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1심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폭탄 메모’와 ‘제3의 거물’의 존재 가능성, 그리고 2억원짜리 사과상자의 존재 여부…. 미스터리는 과연 풀릴까.

김흥주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 일지

2003년 2월
김흥주 삼주산업 회장의 로비 의혹 불거져 김씨, 검찰 내사 중 미국으로 도피

2006년 11월
김흥주씨 비밀리에 귀국해 10일 후 자수

2007년 1월
신상식 전 금감원 광주지원장 대출알선 혐의 구속. 신씨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에게 거액 든 사과상자 전달” 진술. 김중회씨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3월 신씨, 김중회씨 관련 진술 번복, “사과상자 전달 사실 없다”

5월 김중회 사건 1심 8차 공판 속행 예정(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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