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열차가 없어졌네”/세워둔 6량 한밤 「증발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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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철길따라 16㎞ 굴러가/신탄리역서 연천역까지/야근자조차 모르다 날샌뒤 찾기 법석/철도청,뒤늦게 보고받고 “쉬쉬”
노태우대통령 정부의 임기말을 앞두고 정치권의 분란·공무원기강해이 등 사회전반이 들뜨거나 풀어지는 분위기속에서 경기도 의정부∼신탄리역간 경원선을 운행하는 기관차가 제동장치결함으로 기관사도 없이 경사진 철도를 따라 16㎞거리를 굴러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더구나 사고발생당시 신탄리역 당직실에는 3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고 열차찾기소동을 벌였다. 신탄리역측은 사고발생 20여일이 지난후에야 철도청에 이를 보고했는가 하면 철도청 또한 한달여동안 「쉬쉬」히며 이를 은폐,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사고=지난 4월29일 오후 11시5분부터 30일 오전 5시50분사이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2리 신탄리역(역장 봉병호)에서 운행대기중이던 철도청소속 843호 열차(기관사 조광현)가 제어장치 미비로 경사진 철로를 따라 16㎞ 떨어진 연천역까지 자동운행되다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열차는 기관차 1량과 객차 5량인데 차체가 노후해 엔진을 계속 가동시킨 상태에서 다음날 운행을 대기하고 있었으며 자체진동으로 차체가 움직여 다음역인 대광리역을 지나 16㎞ 구간의 경사진 철로를 따라 운행을 계속했던 것이다.
당시 이 구간은 운행열차가 없었고 철로가 모두 정상궤도로 돼있어 충돌이나 탈선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이 구간의 대광리·신망리·연천역 야근자들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는 것이다.
사고당시 신탄리역 당직실에는 3명의 직원이 숙직근무를 하고 있었다.
◇열차찾기 소동=다음날인 30일 오전 5시50분 기관사 조씨는 첫차 운행을 위해 출근했으나 열차가 보이지 않자 동료들과 함께 부근 역에 긴급 전화,16㎞나 떨어진 연천역에 정차해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곧바로 회송조치하는 소동을 벌였다.
기관사 조씨는 29일 운행을 마치고 안전제동을 위해 시동을 걸어놀은 상태에서 앞바퀴에 받침목을 받쳐 두었는데 30일 아침 출근해보니 받침목이 퉁겨나가 철로변에 뒹굴고 있었으며 연천역에서 발견된 기관차는 전기퓨즈가 끊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신탄리역관계자는 이날 신탄리역에는 2대의 열차가 시동을 건 상태에서 정차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동소리로 인해 열차가 구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5시50분 의정부∼신탄리구간 첫 열차운행이 취소된채 한시간 뒤인 6시50분 열차부터 정상운행됐으며 역측은 단순정비로 열차운행이 늦어진다는 구내 방송만 하고 사고 사실은 은폐했다.
의정부∼신탄리역 구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5분까지 하루 왕복 32회를 운행하고 있으나 노후 열차가 많아 평소에도 사고가 많은 노선이다.
◇사고원인=철도청은 열차내의 전기퓨즈가 끊겨 제동장치가 풀리면서 정지중이던 열차가 경사도 1천분의 2.3인 철로르 따라 굴러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뿐 아직까지 정확한 사고원인을 가리지 못해 책임자문책조차 못하고 있다.<이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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