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끝)라오스 경제개혁 국영기업 민영화 자율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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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조용히 잠든 도시」 비엔티안이 새벽을 맞으며 창 밖의 소음에 서서히 눈을 뜨고 있다.
지난 75년 파테트 라오가 집권하면서 사회주의 철옹성의 하나로 꼽히던 라오스가 베트남·캄보디아 등 주변국의 급격한 변화와 부산한 개혁움직임에 영향을 받으며 경제개혁에 나서고 있다.
사회주의 17년 동안 천연자원을 제외하고는 인구(4백만명)·고급인력·기술·도로·통신 등 사화기반조건의 낙후가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6백여개 국영기업들마저 파산지경에 이르면서 골수 사회주의자인 카이손 폼비한 대통령마저 개혁을 주창하고 나섰다.
라오스는 지난 90년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고 공산주의의 표상인 낫과 망치 마저 국가문장에서 제거했다.
수반 스리티라트 외무차관조차 『라오스에는 이제 낫과 망치가 불법』이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라오스가 깊은 잠에서 깨면서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대외개방으로 외국의 투자유치를 가속화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 87년부터 시작한 국영기업체의 민영화가 3분의2 수준에까지 육박, 4백여개 업체가 자율경영 또는 개인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라오스에는 현재 국경을 맞댄 태국이 56개 프로젝트에 참가, 최대진출국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모두 10여개국이 1백20개 프로젝트에서 1억5천여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교통·통신 최악상태>
카이손 정부가 앞장서 주도하는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은 그러나 라오스인의 오랜 「숙면」에서 오는 느린 타성으로 인해 마음은 바쁘고 걸음은 느린 사회이중구조 속에 머물러 있다.
베트남의 정치지도자가 개혁을 선언하면서 국민들이 정부를 앞질러 자본주의식 시장경제에 매달리고 캄보디아가 정치혼란 속에서 93년 총선과 새정부를 기다리며 국민 개개인이 나름대로 개혁을 맞기에 분주한 것과 달리 라오스는 국민들이 서두르지 않는 침체 속에 머물러 있다 .
비엔티안의 한 언론인은 『우리 국민은 이제 눈은 떴으나 잠이 덜 깬 상태』라고 이를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40대 초반의 이 언론인은 이 같은 수면상태의 여운이 바로 정부관리부패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이색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라오스 정부는 4천5백만달러의 허약한 국가재정을 보완하기 위해 대외투자 유치로 막대한 금액의 차관을 들여와 기업인들에게 공장건설과 기업설립을 독려했으나 『아무도 이 돈을 쓰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조금 과장된 설명이다.
그는 돈 쓸 사람이 없으니 자금이 정부관리 손에 맴돌고 있고 이 돈은 결국 권한을 가진 정부관리가 유용하거나 횡령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토의 대부분이 높은 산악지대인 라오스는 교통과 통신이 최악의 상태에 있다. 캄보디아·베트남을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드는 메콩강마저 중간지점에 높은 폭포가 가로 막고있어 수송면에서 크게 기여를 하지 못하는 상태다.
내륙 라오스의 고민은 이같은 사회·경제적 기반의 취약으로 해외를 향한 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자급자족을 위한 농업에 치중, 경제적으로 낙후하게 되는데 있다.
국민소득 1백35달러의 저소득에 전체 인구의 82%가 농업에 의존하고있는 라오스는 농경사회의 특징인 기업정신 결여로 정부의 경제개혁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급자족 정신이 일반화된 라오스 국민들은 17년간의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이윤」개념을 잃은 지도 오래됐다.
미국 농업전문가들이 한때 라오스 벼 생산향상을 위해 토양·종자개선 연구를 마치고 라오숭 지역에서 농업개발 정책을 실현하려 시도했었다.

<자급자족생활 만족>
미 조사팀은 한 농업가정을 방문, 소출이 두 배가 넘는 새 벼종자를 제공하고 증산을 위한 기술도 전수했다. 이 조사팀이 3년 뒤에 라오숭을 다시 방문했을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절망감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이 농가는 소출이 두 배로 늘자 다음해 경작면적을 절반으로 줄여 농사를 지었다.
문제의 농민은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데는 일정량의 벼만 생산하면 된다. 좋은 종자와 기술 덕분에 전보다 일을 절반만 하고서도 먹고 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비엔티안의 한 기업인은 지난해 여름 시골로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갔다가 식품을 구하지 못해 곤혹스러웠던 사실을 회상했다.
이 기업인은 비엔티안에서 1백여㎞ 떨어진 시골에서 가족들의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한 농가를 찾았다.
그는 농민에게 『닭 2마리를 팔라』고 부탁했으나 이 농민은 『싫다』고 말했다.
이 기업인은 비엔티안에서 1마리에 5백킵하는 닭을 1천킵에 사겠다고 제안했으나 다시 거부돼 결국 이날 닭고기요리를 먹지 못했다.
닭을 기르는 농민은 『우리는 현재 2천킵의 현금이 필요 없다. 가족 모두 건강해 병원에 갈 일도 없으며 쌀도 채소도 충분하다. 한 마리에 2천킵을 낸다해도 닭을 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느슨한 국민성은 인구 41만6천명의 수도 비엔티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외국인투자법을 개정하고 17년간 정지됐던 헌법을 새로 제정하는가 하면 전에는 국립은행이 1개 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태국 등과 합작한 개발은행 등 모두 3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비엔티안거리에선 외국기업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상점 부쩍 늘어>
주요 호텔이나 고급 식당은 대부분 자리가 텅비다시피하고 5년 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던 개인상점이 급격하게 숫자가 늘어났어도 관광객들만 띄엄띄엄 이들 가게를 찾는데 불과했다.
한 젊은 언론인은 이 같은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외국인이 라오스에 오기 전에 라오스인이 먼저 외국에 나간다.』
비엔티안에서 만날 예정이었거나 한 차례 만난 뒤 다시 만날 약속을 하려했던 정부관리·기업인들도 대부분 「해외여행」이유로 만날 수 없었다. 라오스청년동맹의 한 간부는 3일 예정의 태국 여행일정이 5일이 지나도록 동반한 가족과 함께 태국에 머물고 있었고 한 기업인은 「귀국일자 예정을 알 수 없이」갑자기 해외여행을 떠났다.
한 상공부관리는 이틀 연속 『아저씨 댁에 갔다』는 다른 동료의 대답만 남기고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비엔티안의 한 대학생은 『그 역시 지금 태국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막 출근을 시작한 오전 8시 무렵, 비엔티안 중심가에 위치한 대통령궁은 주변에 경비병력 한사람 없이 한가한 모습이었다.
돌연 군용으로 보이는 지프 하나가 대통령궁내 한쪽 건물에서 천천히 나타나 넓은 정원에 잘 정돈된 잔디밭 위를 유유히 가로질러 다른 작은 건물 뒤로 사라졌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비엔티안의 한 호텔 로비에서 만난 대학생은 『우리는 허가 없이 외국인과 얘기를 나누면 큰일난다』고 주변을 살피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라오스경제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는 눈뜬 일부 인사들의 노력에 불과하다.』 <비엔티안시=글·사진 진창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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