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한국영화제 집행위원장 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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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지로 유명한 피렌체에 '한국영화 전도사'가 있다. 올해로 5회를 맞은 피렌체 한국영화제의 집행위원장 리카르도 젤리(52.사진)다. 최근 전주국제영화제와 상호협력 양해각서를 맺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전주 영화의 거리에서 만났다.

"평범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한국 영화를 만나면서 인생이 변했죠.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가 계기가 됐어요. 디자인이나 영화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란 관점에선 통하는 면이 많다고 봐요."

전주와 피렌체가 우호도시 협정을 맺을 정도로 긴밀한 관계인 덕분에 그는 이번까지 벌써 다섯 번이나 전주를 찾았다. 그러나 전주영화제에 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전주영화제를 보며 우리 영화제에 써먹을 아이디어를 얻으려고요. 영화는 개막작 '오프로드'와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을 봤죠. '오프로드'는 내년 우리 영화제의 한국 독립영화 부문에 초청하고 싶어요. '천년학'도 좋았지만 솔직히 '서편제'에 비해선 재미가 덜하네요."

그는 지난해 9월 평양국제영화축전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그래서 북한 영화도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북한 영화는 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예전 것이 훨씬 나아요. 최신작은 두 편을 봤는데 형편없었죠. 이데올로기 중심이라 옛 소련 영화와 별로 다르지 않았어요. 특히 영화에 감독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아주 이상했어요. 감독은 예술가라기보다 기술자라는 생각이 깔려 있나 봐요."

평양축전에서 그는 이탈리아 영화 4편을 북한에 소개했다. 동시에 북한 당국은 그를 통해 이탈리아에 북한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외국 영화를 상영할 때 극장이 꽉 찼던 사실로 미뤄 일반 관객의 관심은 매우 높은 것 같았어요. 직접 북한 주민을 접촉할 수는 없었지만요. 북한 영화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선 영화의 단점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죠."

그는 한국에도 이탈리아 영화를 적극 소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감독들에게 이탈리아 영화를 물으면 대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1948년)을 들죠. 다른 이탈리아 영화나 감독은 잘 모르는 것 같았어요. 예컨대 '인생은 아름다워'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회고전을 생각하고 있죠."

전주 글.사진=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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