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천사' 온정 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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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 10일 오전 10시쯤 부산시 사하구 괴정동 평화노인요양원에 50대 중년의 남자가 찾아와 80㎏ 들이 쌀 한 가마를 두고 갔다.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이 방문객은 올들어 매달 10일쯤 어김 없이 요양원을 찾아오고 있다. 이 요양원엔 또 지난 8일 오전 한 농부가 김장용 배추 3백 포기를 갖다 주었다.

요양원은 매월 한 번씩 찾아오는 부산해양경찰 정비창 자원봉사대원 20여 명의 도움으로 이 배추로 김장을 했다.

9일에는 40대 중년의 남자가 성인용 기저귀 80개와 물수건 50상자 등 시가 1백70여만원어치를 맡기고 가기도 했다.

영도구 청학2동 천성아동재활원에도 지난 6일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20대 안팎의 남녀회원 6명이 후원금 30만원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자주 찾아 뵙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부산지역 복지시설에 이름을 밝히지 않는 독지가들의 온정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

평화노인요양원 김재용 복지사업부장은 "기업체와 사회 단체 등의 성금과 성품은 줄었지만 얼굴을 내지 않는 독지가들의 온정은 부쩍 늘어서 마음은 더 따뜻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봉사단체의 온정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일에는 한국야쿠르트 아줌마 1천2백여 명이 소년소녀가장과 홀로 사는 노인에게 사랑의 김장을 나눠 주었다.

마산.창원.진해지역 중.고교생 1백여 명으로 구성된 '경남연합 내고장 봉사대' 소속 학생들은 지난달 29일 자신들이 직접 가꾼 배추 2만 포기를 복지시설 김장용으로 전달했다.

이들은 창원시 동읍 봉곡리의 회원 부모가 무상으로 빌려준 농장 4천여 평에 돼지.닭 등 가축을 길러 얻은 수익금으로 배추를 재배해 밀양 오순절 평화의 마을과 창원 북면 소망원, 부산 소망의 집 등 27개 사회복지시설에 나눠주었다.

부산시와 16개 구.군은 복지시설에 대한 외부 온정의 손길이 줄어들자 내년 말까지 '따뜻한 연말과 설날 맞이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시청 각 실.국 간부들과 직원들이 15일부터 70여 곳의 사회복지 수용보호시설을 방문하고 자원봉사를 펼치고 있다.

허상천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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