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와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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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흔히 병을 잘 고치는 의사를 명의라 부르고, 엉터리 치료를 하거나 오진을 자주 하는 의사를 돌팔이의사라 부른다. 이런 명칭은 환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막상 명의와 돌팔이를 구별할 수 있는 뚜렷한 기준을 찾기는 힘들며 그 진부를 가려내기는 더욱 모호하고 어렵다.
화가나 음악가·작가 같은 예술분야에서는 그 우열을 가늠하는 콘테스트 같은 것도 있고, 그 분야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거나 도움말을 주고 참고할 수 있는 비평의 기회가 있으나 유독 의학분야의 의술만은 누가 제일 잘하는가를 시합할 수도 없고 그것을 비평분류 하는 아무런 기구·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그 판단의 어려움이 따른다.
의술은 예술과 달리 사람의 신체(생체)를 직접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술」의 우열은 잘못 그려진 그림이나, 듣기 싫은 음악연주를 듣는 불쾌감 정도로 그냥 봐 넘겨 줄 수 없는 입장이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조잡한 예술은 회피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조잡한 의술은 회피나 용서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법적 문제로까지 비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의술도 결국 신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때로는 오진도 할 수 있고 실수도 한다. 다만 그 오진·실수의 확률이 극히 낮은 의사를 유능한 의사(명의)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의사와 환자의 만남은 의술과 질병의 만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의사도 사람이요, 병을 가진 환자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사랑·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만남이 매우 중요하다.
요즈음 병원에 의료보험 카드를 들고 줄을 선 환자를 보고 있으면 의사를 만나 치료를 하러온게 아니라 마치 치료를 배급받으러 온 것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의료의 대중화운동에 마춘 의료보험제도의 확산으로 의료상품이 규격화·획일화됨에 따라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지나치게 비인간적이거나 사무적으로 처리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들은 가끔 「슈바이처」같은 명의, 영화·텔레비전에서 본 「마커스웰비」같은 작품 속의 명의를 만나게 될 때 지금 우리현실과 너무나 먼 환상적인 이야기만 같아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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