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겨울 때|조미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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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저녁 식탁을 차리다말고 야근을 나가는 그이에게 반찬이 너무 소홀한 것 같아 두부라도 한모 사기 위해 대문을 나섰다.
어둠이 부채 살을 펴는 거리에 하나, 둘 전기 불이 켜지고 걸음이 바쁜 사람들이 바람소리를 내며 곁을 지나간다.
바쁜 마음에 뜀박질하듯 두부를 사 가지고 들어오려는데, 이웃집 가게에서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큰소리로 주절거리며 대문 앞을 휘청거리는 남자가 있었다. 우선 두려운 마음에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그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 가게 주인이었다. 평소 얌전한 모습으로 전자 제품을 수리하고 오토바이로 전선을 싣고 출장도 다니더니 장사가 잘 안 되는지 점포를 내놓고서 몇달이 지난 것 같은데 임대가 안 돼 속상한 마음에 지나치게 술을 마신 모양이다.
그 모습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도 3년 전 서울에서 작은 가게를 하나 냈었다. 버섯 도매 가게였는데 경험도 부족하고 장소 선정도 부적합해 1년도 못되어 전세금만 날려버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셋방을 전전했다.
지금은 그이의 성실한 홀로 서기로 까마득한 절망에서 벗어나 밝게 아이들을 키우며 생활하고있지만 옆집사람을 봄으로써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눈물이 날것 같았다.
한 가정을 등에 진 가장으로서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크면 저럴까-.
같은 남자라면 어깨라도 두드려주고 힘내라고 격려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 실패가 있으면 성공도 있으리란 신념을 가지고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경남 울산시 동구 화정동 대송지구 37b·5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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