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 파행 운영 심각|일부 위원들, 선거 방송 평가·종합 유선 법안 입장 표명 등에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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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방송위원회가 삐걱거리고 있다.
방송위가 선거 방송 모니터 보고서 등 방송위의 주요 사항들을 방송 위원들의 합의 없이 공표 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일부 방송 위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방송위의 이같은 내홍은 최근 선거 보도 감시 연대 회의가 「14대 총선 보도와 시민 언론 운동」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에 참가한 방송위원 이상신 교수 (고려대 사학과)가 방송계 인사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며 드러났다.
이 위원 등 일부 방송 위원들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방송위가 성격상 방송 위원 9인의 합의체 의결 기구인데도 이점이 무시된 채 몇몇 위원들의 뜻대로 방송위의 공식 입장이 최근 잇따라 발표된데 있다.
방송위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위의 내부 갈등이 표출되기는 방송의 최고 정책기구인 방송위 출범 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 위원의 문제 제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송위 운영의 파행성에 대해 이 위원이 제시한 사례는 몇가지로 요약된다.
가깝게는 지난 13일 발표된 방송위의 선거 방송 모니터 보고서가 있고, 멀게는 지난해 정부의 종합 유선 방송 법안에 대한 방송위의 입장 표명 방법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다.
또 탤런트 이순재씨 (본명 이순재)의 드라마를 통한 선거 운동 여부도 문제가 됐다. 방송사에 대한 방송위의 입장이 방송 위원들간의 합의 없이 공표 됐다고 이 위원은 주장하고 있다.
이 위원은 선거 방송 모니터 보고서의 공표 과정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10일 회의에서 방송위가 모니터 보고서를 위원들에게 나눠준 뒤 이날 바로 통과시키려 해 그 내용상 좀더 시간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회의에서 이를 받아들여 다음 번 회의 때 논의키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 내용은 더 이상의 논의나 어떠한 합의도 없이 13일 방송위의 공식입장으로 공표 됐다고 이 위원은 밝혔다.
이 때문에 이 위원 등 일부 위원들은 이번 선거 방송 모니터 보고서가 선감연 등 선거 방송 모니터 단체들의 시각과 동떨어진 채 방송사들을 두둔하는 인상을 주고 있고 이것은 방송위의 위상을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종합 유선 방송 법안과 이순재씨의 드라마 출연 여부에 대한 방송위의 입장 또한 독단적으로 결정됐다는게 일부 위원들의 불만이다.
종합 유선 방송 법안의 경우 정부의 법 제정 추진 과정에서 국회질의 등에 대비한 방송위 측의 내부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돼 준비한 것인데 마무리 작업에서 방송위원들의 합의 절차가 빠졌고 당초 약속을 어기고 그 내용을 정부에 전달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순재씨의 선거 기간 중 드라마 출연에 대한 「적법 판정」 결정 여부도 출연 방송사의 태도를 봐가며 최종 입장을 내놓기로 했으나 이를 어기고 방송사측의 재량에 맡긴 것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방송위 운영의 파행성이라고 이 위원은 지적했다.
결국 이같이 중요한 방송 문제들을 심도 있게 논의하지 않거나 초반에 조금 논의하다가 방송위원 몇 사람의 의견대로 방송위의 최종 입장을 공표 하는 것은 큰 문제라는 시각이다.
방송위 측은 이에 대해 "방송 위원들의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방송위의 공식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다"며 "일부 사안은 위원장에게 재량권이 있다고 판단돼 결정된 내용들"이라고 밝혔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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