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재 「기업차원」은 완화/은감원조치 무엇을 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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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대표쪽으로 표적 바꿔 잡아/사법 일단락,금융추적은 계속
현대를 다루는 정부의 「접근방식」이 사법·조세·금융의 세줄기라면 이중 금융쪽의 접근은 갈수록 문제가 복잡하고 길게 이어지고 있다.
정몽헌 현대상선 부회장을 구속하고 탈세한 세금을 추징하는 것으로 검찰·국세청은 일단 「현대건」에 대한 1차 마무리를 지었으나,금융쪽의 은행감독원은 현안을 계속 걸어놓은채 이번에는 증권감독원으로 문제를 「이첩·연장」시킨 격이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법과 조세는 현대제재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용이하나 금융은 그리 단순하게 다룰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대출금유용」건은 그 「투명성」을 확보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으므로 법규위반임을 증명하기가 훨씬 더 용이한 주식매각 행위자체로 문제를 「이관」시키려는 것이 당국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23일 은행감독원 발표에 쏠린 관심은 과연 현대전자에 대해 대출금유용을 걸어 주력업체 취소를 강행할 것이냐는 문제였는데 이것은 「조사를 계속한다」는 단서를 달아 사실상 제재를 완화·유보하는 대신 정씨의 주식매각과정에 위법사실이 있다는 전혀 새로운 이슈를 들고 나온 것이다.
대출금 유용건과 관련,그동안 실사를 벌여온 외환은행은 문제의 돈이 형식적으로는 대출금이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정씨등이 현대전자 직원들에게 주식을 판돈이므로 주력업체 취소등 규정대로 제재를 가하기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는등 대출금유용건이 쉽게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 주식매각 자체의 위법성을 문제삼은 것은 현대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현대라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성적」인 접근을 하겠으나 정주영씨 개인에 대한 법적 적용에는 한치의 틈도 내보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국은 대출금 유용은 명백하지만 이 회사가 작년 한해 실적만도 21억달러에 이르는 수출업체라는 점을 고려해 주력업체 지정취소등의 제재는 사실상 철회하되 정주영씨 문제에 대한 처리에 관심을 두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현대의 공방전은 역시 단순한 경제차원이라기보다는 「정치역학」에 좌우되고 있는 문제임을 또다시 알 수 있다.
지난 3일 저녁 은행감독원이 느닷없이 현대전자건을 터뜨릴때의 시점을 두고 말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느닷없다」는 것은 현대측에 유용문제에 대해 해명통보까지 해놓은 상태에서 예정에도 없이 해명 하루전날 갑자기 발표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상황이 이쯤되자 세간에는 당국이 감독원 발표와 비슷한 시간에 정씨가 대통령선거 출마선언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발언이 다음날 조간신문에 실린다는 점을 계산에 깔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무성했었다.
일반인들이 시간이 갈수록 현대그룹이 규정을 어긴 부분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고 정부가 이번에는 어떤 무기를 들고 나올 것이며 현대측의 응전태세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만 호기심을 쏟는 것도 양측의 대결을 정치차원에서 바로 보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재계는 이번 은행감독원의 조치내용을 정부가 현대그룹보다는 정주영씨 일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나가는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는 일단 현대제재가 경제계에 줄수있는 직접적인 「충격권」을 벗어나지 않았느냐는 안도감을 표시하고 있다.
재계는 그간 정부가 현대라는 기업에 대한 제재조치를 계속 강화할 경우 전체 경제계에 주름살을 던져줄수 있다는 점을 계속 걱정하며 지난 13일에는 전경련회장단이 회동,정부와 현대의 자제를 촉구하기까지 했었다.
이와 관련,재계의 한 관계자는 23일 『이번 조치는 어찌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말하고 『앞으로 정부가 현대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한다 하더라도 현대는 살리고 정씨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심상복기자>
□정부와 현대그룹간의 공방일지
91.11.1 현대그룹 및 정주영 전명예회장 일가에 대한
국세청의 주식이동조사결과
발표(추징세액 1천3백9억원)
11.19 정주영 전명예회장,추징세액 납부 거부발표
11.21 현대,세금납부키로 방침 변경
12.17 현대상선에 대한 법인세 조사 착수
92.2.10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의 위장분산여부에 대한
조사착수
2.27 현대계열사 사장단,금융제재를 받고 있다며
정부에 해제요청
3.7 현대그룹,외환은행에 가지급금 2천4백83억원
환수계획 통보
3.20 현대그룹에 대한 가지급금 현금상환촉구
(은행감독원,외환은행)
4.3 현대전자 대출금 48억3천만원 유용사실 발표
(은행감독원)
4.4 현대전자,대출금은 주식매각대금이라는 소명자료를
외환은에 제출
4.5 은행감독원,주식판돈이라면 정상참작하겠다며
일부후퇴
4.6 은행감독원,후퇴의사를 번복하며 대출금유용은
명백,주력업체 취소방침 재천명
4.6 현대자동차등 5개 계열사가 주거래은행의 승인
없이 부동산을 취득해 제재(외환은행)
4.8 국세청,현대상선에 대한 법인세조사결과 발표
현대목재공장장 구속.
4.9 정주영씨,관훈클럽토론회에 현대탄압이 경제파탄
부를 것이라고 주장
4.13 전경련 회장단,정부와 현대 양측에 자제촉구
4.17 정주영씨,편집인협회 조찬연설회에서 현대상선
검찰수사는 정치탄압이라고 주장
4.21 현대상선 정몽헌 부회장 구속 수감
4.23 은행감독원,정주영씨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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