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노무현 대 김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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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둘 사이가 아무리 나빠도 그렇지 이건 정말 희한하다. 범여권의 대선 후보 결정에 영향력 행사 경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한나라당 후보 선출은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결로 압축됐다. 그런데 여권 후보는 노무현과 김대중의 대결로 판가름나게 생겼다.

DJ의 무기는 호남 표와 햇볕정책이다. 지난해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햇볕정책을 계속 강조하는 것도, '무호남 무국가(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라며 호남을 자극하는 것도, 새만금 현장을 찾은 것도, 차남 홍업을 무리해서 4.25 재.보선에 내보낸 것도 과거 지지세력 복구가 목표다. 노무현의 가장 큰 무기는 현직 대통령이란 점이다. 시사저널이 각계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조사에서 16년간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늘 현직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밑바닥이었던 2006년 10월 조사에서도 63.2%가 노 대통령을 꼽았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의 힘을 잘 아는 언론인(83%), 관료(78%), 정치인(72%)이 그랬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두 사람은 이런 힘을 바탕으로 범여권의 대선 후보들을 줄세우고 있다. 방법이 다를 뿐이다. 노 대통령은 '네거티브' 방식이다. 하나하나 공개 비판하면서 배제하고 있다. 고건 전 총리에 대해 "잘못된 인사"라고 했고, 정운찬 전 총리에 대해선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 잘하는 게 아니다"고 했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 대해선 "원칙을 파괴하고 반칙하는 사람은 정치인 자격이 없다"고 공격했다. 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대표에 대해선 "좀 실망했다"고 흠집을 냈다. 현직 대통령이기에 특정인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할 수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노무현의 리스트에 남아 있는 사람은 유시민.김혁규.김두관과 한명숙.이해찬 정도다.

DJ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결코 특정인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저 '후보 단일화'를 외칠 뿐이다. "단일정당이 어려우면 연합해서 단일후보를 내라"며 방향 제시만 하고 있다. 범여권 후보들이 'DJ 노선 승계'란 충성 맹세를 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자세다. 그러니 DJ가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당분간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호남+진보'에 홀린 이들이 줄을 섰다. 정동영.김근태.천정배와 손학규.정운찬은 사실상 '햇볕정책 승계'를 공언하면서 DJ 쪽으로 기울었다.

전.현직 대통령도 정치인이기에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법과 국민의 상식을 넘어서면 문제가 된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 범여권의 예비 후보들이 전.현직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내려 하는 심정도 이해는 간다.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맴돌고 있으니 답답해서 더 그럴 것이다. 그래도 거기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자생력을 잃는다. 마마보이 신세가 된다. YS도 노무현도 자력으로 후보가 됐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홀로 설 수 없는 자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