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 허가제 폐지 부작용 심각|대법원 업무량 격증 미제사건 누적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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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상고허가제 폐지이후 대법원의 업무량이 격증, 심리 미진이나 미제사건 누적 등 부작용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90년9월 민사 사건의 상고 허가제를 규정했던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폐지돼 상고제한이 사라지면서 대법원의 업무량은 급격히 증가, 대법원이 부담해야 하는 상고사건 건수는 하루 33· 48건에 달하고 있다.
이 같은 업무수준은 11일 현재 가동대법관 11명이 각자 매일 3건 이상의 판결을 작성해야하는 수준으로 일본의 대법관 1인당 1일 업무량이 1건에도 못 미치는데 비하면 3배 이상 과중한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의 연도별 접수건수는 ▲89년 8천3백79건에서 ▲90년 9천6백33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91년에는 1만48건으로 증가했으며 이 같은 소송 건수의 증가 추세는 행정 소송의 격증 등에 비추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종전과 같은 수준의 심리를 다하기 위해서는 미제사건의 적체가 불가피한 실정이며 신속한 사건처리를 위해서는 졸속심리가 크게 우려되고있다.
그러나 8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우리나라대법원의 상고사건 중 ▲민사소송 92·8% ▲형사소송 96·2% ▲행정소송 84· 4%의 사건이 상고기각 되고 있어 평균상고사건 10건 중 1건 미만만이 대법원에서 구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대법원이 불필요한 사건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법조계의 지적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법원은 상고허가제도입 등 적극적 제도 개선 없이는 대법원이 법률심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판결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면서도 제도개선을 위한 소송법개정 없이는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원로 변호사 방순원 씨는『현재의 대법원체제 아래에서는 국가의 법률해석을 통일하여 올바른 법강(법강)과 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최고 법원의 사명을 기대할 수 없다』며 『사무경감을 위한 긴급조치 마련』을 촉구했다. 방 변호사는 이 같은 문제 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법관의 정원을 현재의 14명(대법원장 및 법원행정처장 포함)에서 20명 수준으로 늘리고 ▲지방법원 단독사건의 상고를 고등법원이 담당하며 ▲소송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가압류 등 일부사건의 상고남용에 대해서는 패소자에게 과태료 등을 함께 부과토록 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또한 법원행정처도 『무제한적인 상고허가는 하급심의 판결을 경시하는 풍조를 낳는 등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하고 『단기적으로는 대법관의 증원이나 재판연구관의 대폭증원이 검토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일부사건의 상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업무폭주에 시달리는 대법원의 현실을 지켜보며「보다 큰 정의의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정의가 가려질 수도 있다」는 미연방대법원의 입장을 다시 한번 곰씹어보게 된다』말로 우리 나라 사법문화의 퇴조를 우려하고 있다.

<권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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