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구조 조정못한 6공형 부실/자생력 상실… 고단위 처방 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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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개 투신사의 거대한 부실화는 이를테면 6공형 부실의 전형이다.
5공때 큰 대가를 치르며 정리했던 해외건설·해운산업은 한때 잘 나가던 어느 한 부문의 산업에 정부나 업계가 무리한 욕심을 내다가 발을 뺄 시기를 놓쳐 생겼던 부실이었다.
그러나 투신의 부실은 유형이 다르다. 5공에서 6공으로 넘어오며 실력이상으로 냈던 경상수지 흑자와 과성장이 「거품」처럼 꺼지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중심마저 흔들려 경제의 구조조정을 진작 밀고 나가지 못했기에 생긴 자본시장의 부실인 것이다. 3개 투신이 떠안고 만 자본시장의 부실은 흔한 말로 바로 6공의 총체적 상황이 한데 얽혀 빚어낸 부실이지 어느 한 분야,어느 한쪽의 책임으로 떠밀어 놓을 수 없는 성격의 부실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고단위 처방을 하지 않고 계속 가다가는 투신의 부실이 너무 심각해져 앞으로는 얼마나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투신의 순기능은 거의 마비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고단위 처방이란 과거 해외건설·해운산업의 부실정리때와 마찬가지로 결국엔 국민경제적 대가를 다른 어디선가 대신 치르고 넘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부실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을때는 너무 비싸 생각할 수 없던 처방이 부실의 정도가 심해지면 도리어 싸게 치이곤 하던 것이 과거 부실기업정리 때의 경험이었다.
더구나 자본시장의 부실을 치유하려면 과거와 같은 금융·세제상의 접근만으론 부족할 것이다. 경제전체를 건실하게 이끌고 정치·사회의 경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과 함께 과감한 정책전환의 발상을 이루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연·기금의 주식매입을 제약하고 있는 규정을 고쳐 주식매입세력을 키워 놓는 일은 평상시 같으면 여러가지 반대에 부닥칠 일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증시의 악순환을 호순환으로 바꾸기 위해 범정부차원에서 심각히 논의할 때가 되었다. 평상시라면 어려운 일이었던 국고여유자금의 지원을 지난해 정부가 결심했을 때 그 불가피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정치권도 국민당과 현대의 자금고리를 끊는 일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것이 아니라,정국의 안정을 기해 증시를 살리는 것이 대권경쟁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투신의 부실을 이제 정색을 하고 다루자는 것은 과거부터 쌓여온 문제의 책임을 몇몇 「현직」에게 묻자는 것이 아니다. 투신의 신탁계정 돈이 편법으로 고유계정에 흘러가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실기업 정리는 「불가피」하므로 하는 것이지 「타당」여부를 따져 하는 것은 아니다. 부실은 「이미 발생한 결과」고 부실정리는 「앞날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정부가 투신사 부실을 치유하겠다는 의지를 보일때 투자자들도 정부를 믿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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