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희생자 에밀리 제인 힐셔는 … 애인 아닌 스토킹 피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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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첫 희생자인 에밀리 제인 힐셔(18.사진.수의학과 1년)와 범인 조승희씨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쾌활한 성격에 승마를 좋아하는 힐셔가 16일 오전 7시15분 이 대학 기숙사의 자기 방에서 조씨의 총탄에 쓰러진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총성을 듣고 달려온 기숙사의 학생관리담당 라이언 클라크(22.남)도 총에 맞아 바로 숨졌다. 두 시간 반쯤 뒤 조씨는 기숙사에서 800m 떨어진 공학관(노리스 홀) 강의실에서 총을 난사해 30명을 숨지게 했다.

이제 관심은 조씨와 첫 희생자 힐셔 간의 관계에 쏠린다. 수사 초기 조씨가 이른 아침에 '여자 친구'와 언쟁을 벌였고, 그 뒤 그녀를 사살하고 달려온 학생사감까지 쐈다는 증언이 단편적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수사 당국은 '치정'에 얽힌 사건으로 봤고, 미국 언론도 그런 식으로 보도했다. 마침 조씨가 범행 후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 썼다는 "너 때문에 일을 저질렀다"는 메모도 발견됐다.

그러나 수사가 진전되면서 힐셔가 조씨와 애인 관계가 아니라 조씨의 스토킹으로 희생됐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8일 힐셔의 룸메이트인 헤더 호(18.여)가 "내가 아는 한 힐셔는 조승희와 무관한 사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힐셔와 절친했다는 호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힐셔의 남자 친구는 따로 있고 매우 사이가 좋았다"며 "나는 조승희를 전혀 모르며, 내가 아는 한 힐셔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왜 힐셔가 조씨의 첫 희생자가 됐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조씨의 룸메이트들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조씨가 기숙사 같은 층의 여학생 3명을 스토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조씨가 힐셔와 연인 관계였던 것이 아니라 단지 집요하게 스토킹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한 수사관의 말을 인용해 "조씨의 범행은 질투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분노 때문으로 보인다"며 "힐셔는 단지 운이 없어 첫 희생자가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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