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주춤한 검찰|여론 다르랴 파장 줄이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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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안기부 직원들의 흑색 선전물 살포 사건과 한맥 청년회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10일째를 맞고 있으나 핵심적인 의혹 부분을 파헤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초보적인 방증 수집 차원을 맴돌고 있다.
특히 흑색 선전물 사건은 구속된 한기용씨(37)등 안기부 직원 4명이 『친구의 부탁에 따라 개인적으로 범행했을 뿐 상급자의 지시는 없었다』는 당초의 진술에서 한치도 진전이 없는데다 이들의 진술을 뒤집을 만한 이렇다할 자료도 없어 배후·유인물 작성·살포 경위 규명 등 이 사건 본줄기에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검찰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두 사건 모두 용두사미 식으로 처리될 가능성을 점치며 수사 결과에 기대할게 없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흑색 선전물 사건=검찰은 구속된 안기부 직원 4명이 민주당원들에게 붙잡힌 직후 「홍사덕 당선자에 대한 비방 유인물은 안기부에서 대형 봉투에 봉인된채 20일 오후 9시쯤 안기부 모 직원으로부터 받았다」고 쓴 자술서 내용을 근거로 추궁했으나『심한 폭행·협박에 못이겨 시키는대로 썼다』고 번복하는 바람에 배후 수사가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안기부의 철저한 상명하복과 업무처리 속성상 친구의 부탁에 따른 범행이라는 진술은 믿지 않으면서도 번복시킬 증거가 없어 답답하다는 하소연이다.
검찰은 이 사건에 쏠린 이목과 허술하게 넘겼을 경우 야기될 파문 때문에 전모를 캘수 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진상 규명이 몰고 올 또다른 파장과 의외의 결과 등을 고려해 아직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검찰주변에서는 이 때문에 검찰 차원 이상에서 이 사건 수사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순수한 수사 논리로만 처리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맥회 사건=한맥회 회장 최승혁씨 (31) 와 총단장 박종효씨 (30) 등 2명을 두 번씩 불러 한맥회의 실상과 운용 상황 및 대학생 동원 대가로 일당을 지급했다는 사실은 밝혀냈으나 구체적인 당사자·혐의는 확정짓지 못했다.
검찰은 이들로부터 『한맥회 회원은 2천9백명으로 서울·경기 지역 민자당 지구당의 요청에 따라 회원 명단을 넘겨주면 해당 지구당이 동원하고 1인당 5천∼2만원씩 일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이 수사결과의 전부.
이에 따라 동원 내용이 기록된 상황 보고서에 기재된 지구당 가운데 1백명이상 동원한 10여개 지구당 관계자를 순차적으로 소환,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한맥회 간부들과 지구당 관계자가 무등록 선거 운동원을 고용한 점에서 선거법에 어긋나는 부분은 있으나 선거 운동의 현실상 형사 처벌 여부는 충분히 조사한 후에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김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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