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따라 달라진 「선거선물」백태/“점점 고급화·음성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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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무신(50년대)→비누(60년대)→라면(70년대)→종합선물(80년대)
총선때 선량예비생들이 유권자에게 돌리는 「선물」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까지 13번의 총선에서 등장한 선거용선물은 소득수준 정치상황등에 따라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선거선물」은 50∼60년대의 검은 고무신·세탁비누에서 최근에는 도자기세트·시계·전기밥통 등으로 고급화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48년 우리나라 최초의 총선인 제헌국회때는 별다른 선물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노인회의 박재간 노인문제연구소장(69)은 『제헌국회때는 유권자들이 입후보자들에게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다며 오히려 현수막용 광목 등을 갖다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3대(54년)·4대(58년) 총선부터 후보들이 국회의원의 「단맛」을 알게 되고 자유당정권의 노골적인 부정선거운동까지 가세,매표를 노린 본격적인 선거금품시대에 돌입했다. 이때 선거선물로 애용되던 것은 당시 물량이 부족해 귀했던 검정고무신과 세탁비누. 이로 인해 「고무신선거」라는 말이 생겨났다.
또 본격적으로 유권자들에게 향응이 베풀어졌다.
향응음식의 원조격은 막걸리. 일부 입후보자들은 동네 주막집을 선거본부로 삼기까지 했다.
막걸리는 70년대 후반 맥주에 자리를 내놓기전까지 선거향응의 단골메뉴로 한시대를 풍미,「막걸리선거」라는 말을 남겼다.
60년대 후반 7대(67년)총선부터는 수건·화장비누가 새로운 선거선물로 등장했다.
당시 S타월과 D·L사 등이 비교적 질좋은 수건과 화장비누를 대량생산하게 됨에 따라 입후보자가 자신의 이름을 박은 수건과 6개들이 비누상자를 돌렸다.
세번 총선을 치른 70년대부터는 양말과 라면·밀가루·설탕·쌀부대 등 식용품이 서민층을 대상으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삼양식품의 한 관계자는 『총선때는 다른해보다 매출액이 20∼30% 이상 더 늘었다』고 말했다.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양로원·고아원 등에 TV를 기증하는 입후보자가 생겨났다.
또 세제·샴푸 등이 선거선물로 등장했으며 79년 10대선거에서는 입후보자의 이름을 넣은 볼펜·공책 등 학용품과 재떨이가 많이 돌려졌다. 70년대 후반들어 소득증대를 반영,향응음식으로 막걸리대신 맥주와 불고기를 내놓는 후보들이 늘어났다.
세차례의 총선을 치른 80년대에는 선거선물이 손지갑·냄비·보자기·라면·쌀부대·쟁반·설탕·과일·상자·우산 등 다양해지고 때로는 한봉지안에 여러 물건을 넣어 돌리는 「종합선물」도 등장했다. 각종 명목의 「향응관광」으로 선거철이면 관광지가 때아닌 호황을 맞고 60∼70년대 인사치레 정도로 돌던 돈봉투가 액수도 커지고 공공연한 「매표실탄」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번 14대총선에서는 『정부가 눈에 보이는 물량공세를 강력하게 단속해 예년에 비해 불황』이라고 「선물」관련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단속의 눈을 피해 선물이 음성화·고급화되는 추세다.
일부지역에서는 고급우산·가정용공구·도자기·손목시계 등 2만∼5만원대의 물건들과 증거를 남기지 않는 돈봉투가 선거운동원등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뿌려지는 것으로 알려져 90년대에는 「현금」선물이 자리잡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오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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