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공인의식/주권의식 확립위한 캠페인(선거혁명 이루자:2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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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투표는 정치인 뽑는 국가대사/사적인연 끊고 신중한 결정을/김광웅 교수 서울대·정치행정학
이 나라 정치가 잘 안되는 중요한 원인은 정치엘리트는 많아도 「정치공인」이 많지 않다는데 있다. 정치인의 경우 학벌과 경력면에서의 엘리트는 많아도 「정치공인」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편 사인은 일반국민도 경우에 따라서는 공인의 자세로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선거와 같은 상황에서는 유권자 스스로가 공인의식을 갖지 못하면 정치인의 비공인적 행동에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남을 대신해 일을 하겠다는 정치엘리트가 정치공인이 되는 것이 쉽지 않듯이 일반국민인 유권자가 공인으로 행동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공공의 장(정치세계)에서의 공적 활동이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엘리트를 선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뽑는 사람이나 뽑히는 사람이나 함께 공인이어야만 한다.
먼저 선거에 입후보할 정치엘리트들을 보자. 그들중 상당수는 엘리트라는 이름을 붙여주기에 걸맞지 않게 미성년자들의 의식과 행동만도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학력이나 경력을 내세우기 좋아하는데 그들의 학력이라는 것이 겉으로는 그럴듯 하지만 돈으로 산 것이 눈에 보이고,경력도 이름만 거창한 무슨 협의회다 단체다 했지 권력주변에서 밑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학력·경력을 수치스러운줄 모르고 내세우는 것은 유권자를 얕보는 행동에 다름아니다. 반면 학벌이나 경력이 화려하고 공적세계에 오래 몸담아왔음에도 아직도 공인이 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들은 공공선에 어긋나는 옳지 못한 정책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온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출세에 매진해온 습관 그대로 공(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사(나 자신)만을 앞세운다. 그들에겐 비판의식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꾹꾹 누르고 권력의 논리에 스스로를 순응시킨다. 배경은 다르되 행태에 있어서는 오히려 동질적인 이런 부류의 정치엘리트가 태반이니 선거판인들 어지럽지 않을리 만무한 것이다.
모름지기 공인이려면 우선 교육과 사회경험이 사회성원의 평균치 이상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해 왔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스스로 부끄러운 일을 다반사로 해 왔으면서도 겉만 번지르르하다면 이건 안된다. 지난 정치를 돌이켜 보고 지금의 정치를 정시해보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민의 편에 서서 자신있게 행동해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권좌에 가까이 가있는 사람일수록 그들이 분명히 공인임에도 「집안일부터 챙기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한두사람의 요구와 편의 때문에 공적체계를 허물어뜨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나와 내 가족과 내주변을 최우선에 두는 천박한 사인들로서 공적 윤리나 공적도덕이 뼈를 깎는 자기인내와 수양으로 쌓아진다는 것을 모르고 공직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공인이라고 생각한다. 개중에는 결과는 좋지 않아도 동기는 순수했다고 강변하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공인은 사인과는 달리 동기보다 결과에 대해 더욱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인은 사인보다 더 사람됨됨이가 남달라야 하고 그러려면 남을 앞세울 줄 알고,스스로 희생하고 양보해 남의 수범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불의에 대해 침묵을 지키지 말아야 할 것이 그중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까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릴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뽑아왔다.
투표한다고 하는 것은 공인을 뽑는 공적 과정으로서 사적과정에 참여한 것과는 다르다. 투표를 한다는 것은 등산이나 낚시를 갈까,아니면 집에서 낮잠이나 잘까를 결정하거나 또는 시장에 가서 어떤 일용품을 살까를 결정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며느리나 사위를 고르는 것보다 더 큰 고민을 해가며 신중히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공인을 고르는 일이다.
그러려면 유권자는 자신이 얽매여 있는 사적 인연의 사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인을 뽑는 공적 과정에 참여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나의 나」(사인)를 버리고 「나의 너」(공인)를 앞세워야 할 일이다. 국민을 때로 공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정치를 하려면 『개인으로서의 투표자가 지적으로 현명해야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토인비의 말도 유권자의 공인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부끄러운줄 모르고 손 벌리는 일부 군중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적어도 투표일 하루만은 공인의 품격을 지닐 것임을 믿는다. 공인을 뽑는 일은 공인만이 할 수 있다는 자세로 모든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을 맞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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