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를 국군포로라 부를 수 없다는 통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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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군포로.납북자'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13일 금강산에서 끝난 제8차 남북 적십자회담이 계기가 됐다. 이 회담에서 북한은 "국군포로 같은 용어를 계속 쓰면 회담 진행이 어렵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 직후 정부의 태도가 변했다. 이에 따라 '북한 눈치보기의 극치'란 비판이 일고 있다.

◆ 이 장관 "용어 통일했다"=1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나온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적십자회담 결과를 보고하며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생사.주소 확인을 북측과 협의.해결하기로 했다"고 했다. 국군포로.납북자란 말 대신 이런 표현을 쓰자 "왜 제대로 된 주장을 못하고 북한 요구대로 따라가나"(김용갑 의원), "우리 통일부가 맞나"(김광원 의원)라는 등 한나라당의 비판이 쏟아졌다.

회담 남측 수석대표인 장석준 한적 사무총장도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국군포로.납북자란 말을 꺼내지 않았다. 통일부가 배포한 회담 결과 설명자료도 마찬가지다.

이재정 장관은 "이 문제는 제18차 장관급회담에서 남북 간 용어 통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북 협의에 관여했던 관계자는 "전쟁 시기와 그 이후 행불자란 표현은 북한이 국군포로 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 고육책으로 합의문에 담은 것"이라며 "이를 국회 보고나 대국민 설명에 그대로 쓰겠다는 건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 대북 지원엔 박차=북한은 국군포로.납북자와 남한 가족의 상봉을 본격 추진하자는 남측 제안을 거부했다. 각 100가족이 만나는 이산상봉 때 5명 정도 포함시켜 만나는 현재의 방식대로만 하자는 주장이다.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 정부의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2월 7차 적십자회담 때 '전쟁과 그 이후 시기 행불자'에 대한 생사 확인에 북한이 합의했던 점을 들어 지나치게 낙관하다 회담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산가족 교류 확대와 다양화가 회담 성과"란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이미 합의됐던 5월 상봉 외에 추석(9월 25일) 상봉에 합의했다고 하나 예년 수준(연간 2~3차례)에 불과하다. 연간 여섯 차례를 요구했던 남측 제안과는 거리가 있다.

영상편지도 남북 각 20가족에 그쳤고, 화상상봉도 두 차례만 잡혔다. 북한은 체제에 부담이 적은 화상상봉.영상편지 등 비접촉 방식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북한이 요구한 수백억원 규모의 평양 적십자병원 현대화 지원에 합의해줬다. 또 통일부는 이날 42개 대북 지원 민간단체에 117억원을 주기로 하는 등 150억9000만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또 이재정 장관은 국회에서 "남북 간 항공편 왕래가 잦아진 상황에서 이제는 남북 간 정기항로를 개설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조치가 없더라도 항공편을 이용한 길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해 가도록 하겠다"며 "지난 장관급회담에서도 정기항로를 개설하자고 (북측에) 요구한 적이 있다"고 밝혀 남북 당국 간에 정기항로 개설 문제가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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