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에 매달리는 「5공후보」/김진 기동취재반(총선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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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정부조직법과 국군조직법에다 보안사운영규정까지 있었지 않았습니까. 나는 일개 보안사 준위였어요. 비상계엄하에서 조직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뿐인데…. 이번에 표의 심판을 받을 겁니다.』(공주시 백제장학회 이사장실에서 만난 이상재씨)
『나를 떨어뜨리려고 6공이 최이호,김동욱씨를 나오지 못하게 했어요. 유권자에게 물을 겁니다. 표의 심판을 받아야지요.』(사천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허문도씨)
14대 총선현장에서 각개약진하고 있는 5공청문회 주역들은 이렇듯 「표의 심판」「주민의 뜻」을 내세우고 있었다.
몇년전 언론과 사회가 자신들을 그렇게 밟았지만 자신들은 「인동초」처럼 건재하며 이번에 당선돼 아예 「면죄부」까지 받아내겠다는 논리다.
이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92년 총선에 던져지는 한표는 1백% 심판의 무게를 지니는 것일가. 후보들도 사연없이 완전히 중립적인 심판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무소속 이상재씨의 두더지득표작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이를 검증해 볼 수 있다.
6일 오전 6시반 이씨는 전화공세로 하루를 시작한다.
대개 상대는 전주이씨 문중사람이나 교류가 뜸했던 영명고동문이다.
『같은 집안끼리 도와주셔야지요』『저쪽(윤재기 의원)은 공주고가 세게 뭉쳤는데 우리도 이번에 힘좀 써야죠.』
이씨는 문중 3천여표,동창 4천여표라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백제·영명·이화 등 3개 장학회가 뿌린 씨앗과 자신이 다니는 제일감리교회등 개신교 주변도 크게 기댈 구석이라고 했다.
충무­통영­고성에 출마한 허씨의 두더지작전도 이씨만큼이나 소문이 나있다.
정당공천자에 비해 매우 불리한 무소속 주자들이 이렇게 저인망식으로 표밭을 훑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이를 탓하려는게 아니라 혈·학·교연에 매달리면서도 유권자들의 「냉정한 심판」을 앞세우는 그들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해진다.<공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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