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온 가족이 한방 살림-"부부 생활 어렵다""|독특한 가옥 구조-베트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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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베트남의 서민 가정을 방문한 인상은 어둡고 긴 동굴을 탐험한 뒤의 경이로움과 흡사했다.
수도 하노이시의 중심가에 위치한 트란 둥 하씨 (68)의 집은 입구에서부터 좁고 어두운 통로를 거치는 것으로 시작됐다.
하노이시 주요 관공서·백화점·우체국·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카이 트랑 티엔가 큰길에 면한 하씨의 집은 폭 1m의 캄캄한 회랑을 10여m 들어가자 회랑 왼쪽으로 여닫이문이 달려 있는 「집」이었다.
사전 연락을 받은 하씨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실내에서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취재진을 맞았다.
『갑자기 정전이 돼서 손님 맞기가 난처하게 됐습니다. 베트남은 요즘 정전이 잦습니다. 베트남의 실상을 직접 보시게 된 것 같습니다.

<커튼으로만 가려>
금방 눈에 들어온 실내는 깨끗이 청소된 시멘트 바닥의 7평 규모의 방이었다. 한쪽에 작은 옷장이 있고 맞은 편에 낮은 찬장과 그 위에 14인치 TV 한대, 비디오 카셋테이프 플레이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실내에는 3인용·1인용 소파와 그 앞에는 차 탁자가 정돈돼 있었다.
3년 전 은퇴하기 전 정부 고위직에 있었다는 하씨는 논리 정연한 말솜씨와 열성적인 어조로 베트남의 오늘을 설명했다.
하씨의 집 1층은 모두 10평 규모. 위층은 칸막이 없이 다락처럼 생긴 4평 크기의 복층 형식이었다.
위층은 하씨가 쓰고, 아래층은 소파 뒤로 벽이나 칸막이 없이 흰색 무명천으로 된 커튼에 가려진 아들부부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하씨는 이 집에 손자·손녀 등 모두 5식구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손자들은 어디서 잠자느냐』는 질문에 하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함께 간 이웃 여자가 통역을 통해 질문 내용을 알아듣고 시멘트 바닥의 거실 겸 방인 차 탁자 앞을 손가락질하다 얼른 손을 거두어들였다.
하씨의 집은 할아버지, 아들 부부, 작은 아들 손자들이 완전히 개방된 하나의 실내에서 살고 있었다.
이 집 입구인 작은 통로는 모두 8가구가 같이 쓰고 있었다. 통로 끝에는 7평 크기의 마당 같은 건물내 공간이 있었고 이곳은 8가구의 부엌이자 세면장이고 세탁장이자 이웃 간의 만남의 장소였다. 화장실은 8가구 공동사용으로 따로 마련돼 있었다.
하씨는 1954년 이 집에 입주해서 지금까지 38년 간 계속 살아왔다면서 자신의 생활 수준을 자신 있게 『베트남 중류 생활』이라고 말했다.
그는 TV·VTR·모터사이클·자전거·냉장고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자랑했다.

<굳이 큰집 필요 없다>
그는 TV는 4년 전에, 냉장고는 15년 전에 구입한 것이라고 말하고 최근에 구입한 새 모터사이클은 전 가족이 5년간 열심히 저축한 끝에 산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공무원인 아들들도 저녁에 다른 부업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며 며느리 역시 얼마전 출산 후 하노이시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작은 식당을 꾸려나가고 있어 가족 생계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의 집에 만족하고 있다』면서 크고 새로운 집을 구하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하씨는 공무원인 아들의 월급이 고작 8만동 (6천원) 밖에 안돼 1억5천만∼2억동하는 큰집을 마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자신의 집을 팔 경우 1억동 가량 한다고 말한 하씨는 새 집을 마련하려면 적어도 5천만∼1억동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 내는 집 임대료가 한달에 8동 (0.6원) 밖에 안 되는데 구태여 이사갈 이유가 없다는 태도였다.
하씨가 베트남의 근세사를 조리 있게 설명하는 동안 분가한 그의 둘째 아들이 갑자기 문을 밀치고 들어와 밤에 손자들이 잠잔다는 거실 안에 모터사이클을 끌어다 벽에 기대놓고 나갔다.
하씨의 집과 같이 하노이 근교 화훼 단지의 농가 역시 실내가 개방된 주택 구조였다.
하노이시 서쪽 5km 거리의 투 리엠구 쾅안 마을 쾅바촌에 있는 팜 티 수옌씨 (48·여) 집은 12평짜리 전형적인 베트남 시골 부잣집이었다.
목재 기둥에 붉은색 기와를 얹은 수옌씨의 집은 나무판자로 된 벽으로 바깥과 구분돼 있었다.

<나무 깔아 칸 나눠>
빗질이 잘된 흙바닥의 실내에는 나무로 바닥을 깐 3칸의 방이 마련돼 있었으나 각 칸은 벽은 물론 커튼도 없었다. 7명의 가족이 사는 수옌씨의 집은 한쪽 구석 칸은 80이 다된 시어머니가 쓰고 있었다. 그 옆 칸은 수옌씨 부부, 그리고 건너편 칸은 5명의 자녀들이 쓰는「침실」로 돼 있었다.
수옌씨는 집 앞 85평 크기의 마당에 달리아·국화·탱자나무 등을 심어 이들 꽃을 하노이에 내다 팔아 생활하고 있었다.
수옌씨 집 역시 대낮인데도 실내는 캄캄했다. 실내를 밝히는 것은 한 가운데 정중하게 마련된 불단에 꽂힌 촛불이 고작이었다.
하노이 시내에서 저녁 초대로 만난 베트남인 리터봉씨 (40)는 『한국 사람은 이같은 베트남식 집 구조에 당혹할 것입니다만 그것이 우리들의 집 구조입니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5년간 「조선어」를 배웠다는 봉씨는 평안도 억양의 「조선어」로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우리 베트남 사람들, 특히 부부들은 이같은 집 구조 때문에 부부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아이들을 여럿 낳아 기르고 있습니다.』
봉씨는 한국처럼 벽이 있는 부부 침실을 갖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하노이시=글·사진 진창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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