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무료 신변보호 왜 인기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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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인천 A중 김혜진(가명.13)양은 등교를 하느라 집 밖을 나서면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의 등굣길을 보호해주기 위해 나온 출동요원을 찾기 위해서다. 멀찌감치 서 있던 사복 차림의 출동요원이 '눈짓 사인'을 보였다. 김 양은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 양은 교육부가 지난 2일부터 시행한 무료 신변보호 서비스의 첫 신청자였다. 지난달 친구들의 편싸움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보복이 두려워 서비스를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김 양은 이 보호 서비스를 일주일만에 중단했다. 김 양의 아버지는 "혹시 혜진이가 보호 받는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더 큰 보복을 당할 수 있을 것같아 서비스 중지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 양처럼 무료 신변보호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8명. 교육부는 지난달부터 학교 폭력에 노출된 초.중.고교 학생의 등.하굣길을 잠복 동행하면서 일주일 단위로 신변을 보호해주는 '청소년 지킴이'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시행 열흘이 지나도록 신청 건수는 11건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3건은 이미 완료됐다. 지난해 폭력으로 징계받은 학생 수는 초.중.고 합쳐 총 6267명. 신변보호 서비스가 사실상 폭력 피해자로부터 외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변보호 왜 인기 없나=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신변보호 서비스의 기본 룰이다. 그러나 정작 김양의 담임교사 박모씨는 "요즘 아이들 눈치는 굉장히 빠르다"며 "보호받는 것을 알아차리면 자체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일도 더 크게 벌어질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는 '조사하면 다 나와' 라는 것이다.

또 신변보호 요청 자체가 학교 측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B고교의 한 교사는 "폭력 피해 학생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난처한데 신변보호를 받으면 학교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며 "일주일 신변보호 이용 후 계속 연장하게 되면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학교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추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의 C초등학교 교사는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교사에게 가산점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학교 측이 학교폭력 사건을 은폐.축소할 가능성이 높아 문제를 오히려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부 학교폭력대책팀 박정희 연구관은 "서비스 연장이 계속되면 각 지역교육청에서 감사가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학교가 해답"= 전문가들은 폭력 피해 학생을 감싸기만 할 것이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문용림 대표는 "신변보호 서비스는 위험에 직면한 학생을 구출하는 의미로 단기 처방은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아이와 학부모의 심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일단 교사에게 고민을 털어놨다면 학생의 비밀이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법학과 박병식 교수는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은 교사가 아닌 같은 반 친구인데 과연 어느 아이가 교사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가해 학생을 제어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조성된 후 신변보호를 진행해야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컨설턴트가 가해 학생에게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영국)을 제공한다거나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가해 학생을 출석 정지 시킨 후 교화시키는 프로그램(일본)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와 함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팀 천의완 실장은 "교사가 학생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데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면 보호 서비스가 위축될 것"이라며 "폭력 사태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교사가 더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천 실장은 "어쨌든 학교가 해답이다"고 덧붙였다.

학교폭력 피해장소 (2006년 시.도교육청 3000여명 표본 실태 조사)


자료:교육인적자원부

☞신변보호 서비스 '청소년 지킴이'= 학교 폭력에 노출된 학생이 교사에게 피해상황을 알리면 학교는 민간사설업체 KT텔레캅에 신변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 보호는 접수 다음날부터 받을 수 있고 일주일 단위로 연장이 가능하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전국 초.중.고교에 '학생 신변보호 지원 안내문'을 발송하면서 미국 AP통신과 영국 로이터 통신.일본 NHK방송 등이 한국의 등하굣길 신변경호 서비스를 극찬했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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