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1000배" 생명정보의 보물창고, 단백질을 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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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최근 연세프로테옴연구센터(YPRC)는 황인.흑인.백인 등 세 인종의 혈액샘플을 정밀분석한 결과 눈에 띌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이들의 혈액 속에 들어있는 '감마글로불린'이란 단백질들이 같은 염기서열을 가진 DNA를 통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종별로 각각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단백질의 변형과정이 인종의 차이를 구분짓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한국인 유전자를 가졌더라도 하체가 길어지고 얼굴이 작아지는 요즘 10~20대 신세대들의 체형변화가 단백질의 변화에 따른 결과라는 추론을 가능케한다.

단백질은 '생명 정보의 청사진'으로 불리는 DNA로 부터 만들어진다. 머리카락과 같은 몸의 일부를 구성하기도 하고, 에너지 대사활동을 매개하는 각종 효소로도 작용한다. 생명체의 모든 정보는 DNA에 담겨있지만 그 결과물인 다양한 생명현상은 단백질이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유전자(Gene)의 집합체인 지놈(Genome)의 염기서열 분석 작업이 지난 4월 막을 내렸지만, 지놈 프로젝트의 진정한 완성은 결국 모든 단백질(Protein)의 집합체인 프로테옴(Proteome) 연구를 통해 이뤄질수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연세대 백융기(생화학과) 교수는 "프로테옴을 연구하는 학문(-ics)이란 의미의 프로테오믹스(Proteomics)가 주목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지놈에 비해 데이터양이 1천배 이상으로 예상될 정도로 방대한 생명현상을 포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DNA보다는 DNA의 산물인 단백질에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인간과 침팬지가 유전자 상에서 차이를 보이는 수준은 1~2%에 불과하므로 인종은 물론 개인 간에 나타날 수 있는 차이는 극히 미미한 편이다. 이들의 차이는 결국 단백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백질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보다는 다양한 형태로 가공돼 전혀 다른 작용을 보이는 신기의 주인공이다.

그만큼 단백질에 숨겨진 비밀은 알려진 것보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단백질의 비밀을 캐면 캘수록 생명의 신비가 좀더 가깝게 다가와 인간의 난치성 질환 극복에 적극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프로테오믹스의 진가다.

다행히 한국이 갖고 있는 연구개발력은 산업자원부의 프로테옴 정보인프라 구축과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지원사업, 과기부 연구개발사업 등에 힘입어 세계 톱 10 안에 들 정도로 앞서있다는 것이 세계적인 평가다.

2001년 인간프로테옴 지도작성을 위해 결성된 세계인간프로테옴기구(HUPO)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데 이어 한국인간프로테옴기구(KHUPO)를 이끌고 있는 백교수가 HUPO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고,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박영목 박사가 최근 새로이 자문위원에 선출될 정도로 국제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난 10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HUPO의 인간혈액단백질사업에 참여한 47개 컨소시엄팀 중 중간실적 발표 결과 백교수와 기초과학지원연 유종신 박사가 주축이 된 한국팀이 가장 많은 단백질수를 규명, 정확성과 기술분석의 다양성 면에서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았을 정도다. 세계 지놈 프로젝트에 기여하지 못한 한국이 앞으로 특허 등 지적재산권 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돌파구가 프로테오믹스인 셈이다.

지난달 연세대 내에 개소한 복지부 지정 질병유전단백체연구지원센터(BPRC)도 전국의 15개 질환군별/미생물 유전체 센터가 수행 중인 프로테오믹스를 본궤도에 올리기 위해 중앙집중형 기술지원과 단백질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설립됐다. 자체연구로, 우선은 한국인의 혈액단백질 표준지도작성을 서두르고 있다. 20대 중반의 남성을 기준으로 혈액단백질 표준지도를 작성해서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다음 다양한 질환군별 환자의 혈액과 비교해보면 한국인 특유의 질병 연구를 빠르게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이다.

BPRC의 또다른 목적은 이들 유전체 센터들의 단백질 연구 방법을 표준화 하는 데 있다. 실험방법에 따라 단백질이 다르게 탐지된다는 점을 보완해 이를 통일시키기 위함이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연구를 위해 BPRC에 앞으로 8년간 매년 24억원씩(연세대의 4억원 대응지원 포함)을 지원할 계획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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