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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 50년을 내다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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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오늘 한국에 온다. 11년 전 입던 잠바를 그대로 입고 해진 운동화를 즐겨 신는 소박한 모습으로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다. 만면에 웃음을 띠는 온화한 모습이지만 철두철미한 일처리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신임을 받고 있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한.중 수교 15주년을 기념하는 '한.중 교류의 해'에 이뤄지는 그의 방한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국가 이익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커 단기간에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구축했으며, 앞으로도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형성해 가야 한다.

우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긴밀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북핵 문제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북.미 관계의 진전으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중국보다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중국은 자국이 주도했던 2.13 합의에서 나름대로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한국과 외교적 협력을 지속함으로써 북한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주고자 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한.중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북 관계에서 한.중 간의 경쟁보다는 협력을 중시해야만 한다. 향후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의 군축 논의가 시작되고, 6자회담을 바탕으로 다자안보협력구상 논의가 활성화될 때에도 한국과 중국은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됨에 따라 중국과의 FTA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미 원 총리는 한.중 FTA를 원한다고 밝혔다. 한.중 두 나라의 경제가 상호 보완성을 갖고 있어 한.중 간 경제 협력은 양국의 경제 체질 개선 및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다. 나아가 동북아 경제공동체 형성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에 따른 불안 요인을 미리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중국의 주가 등락이 고스란히 역내경제에 파급 효과를 내고 있으므로 이를 주시해야 한다. 또한 중국은 외환보유액이 1조 달러가 넘는 상태에서 최근 외자 유치보다는 자국의 제조업 발달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대중국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중국 내 임금의 상승과 정부 지원의 감소에 따라 한국 기업이 불이익을 받고 퇴출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원 총리가 밝힌 대로 한.중 양국 간에는 영토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확인된 사실은 공유하면서도 이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역사 해석의 차이를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시키는 태도는 자제해야 한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전망'을 공유함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추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북아 지역에 존재했거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여러 민족의 역사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간다면 역사 문제는 갈등의 영역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영역이 될 수 있다.

한.중 국민은 매년 500만 명 넘게 왕래하고 있다. 2012년에는 양국 간 교역 목표액이 2000억 달러를 상회하게 될 것이다. 이미 중국은 한국의 제1의 수출국이자 수입국이다. 한.중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동북아에서 패권의 역사를 넘어 평화와 지역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중 관계는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큰 비중이 주어져야 한다. 동북아 공동체 실현이라는 큰 비전을 갖고, 문화적 다양성 아래에서도 공동의 가치를 나눠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한.중 양국이 지난 15년의 협력에 바탕을 두고 미래 50년을 내다보는 안목을 키워야 할 때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