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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국민연금, 지금 안 고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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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혁을 늦출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내년에는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생긴 때부터 보험료를 낸 가입자들이 연금을 받기 시작한다. 이들은 가입 20년이 돼 법이 정한 연금을 100% 다 받는다. 배준호 한신대 교수는 "완전 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하면 그들의 반발 때문에 연금을 깎는 개혁은 매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각 후보가 연금제도를 공약으로 채택하면 인기 위주의 개정안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정당 구조에 변화가 생긴다면 연금법 개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 아들딸이 고생한다=현행 국민연금제도가 유지되는 것을 가정한 2050년의 미래상은 암울하다. 2000년 '즈믄둥이'라는 축복 속에 태어난 김민철(50)씨. 민철씨는 국민연금 보험료 통지서만 보면 머리가 아프다. 전자업체에 다니는 그는 한 달에 지금 돈으로 200만원을 번다. 그러나 이 가운데 60만원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고 있다. 3년 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서 아버지 시대에 9%씩 내던 보험료가 30%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아버지인 김정민(83)씨는 아들 볼 면목이 없다. 김씨는 30년간 6000여만원 내고 지금까지 총 2억원 정도를 연금으로 받았다. 그러나 아들인 민철씨는 자신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돈을 내고도 자신과 같은 액수의 연금을 받을 뿐이다. 김씨는 아들이 고생하는 걸 보면서 직장 다닐 때 당장 부담된다고 보험료 올리자는 것에 반대했던 것을 후회한다.

◆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런 얘기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올해 태어난 아이들이 마흔이 되면 겪어야 하는 일이다. 현재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은 200만 명이고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1200만 명이다. 내는 사람은 많고 받아 가는 사람은 적으니 돈 주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돈 받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증가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100만 번째 연금 수급자가 나오는 데 15년이 걸렸으나 100만 명이 200만 명이 되는 데는 4년이 걸렸을 뿐이다. 2030년대에는 돈 받는 사람이 1000만 명을 넘어서는 반면 돈 내는 사람은 1400만~1500만 명 선에서 더 이상 늘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2036년이면 연금 주는 돈이 보험료 수입보다 많아진다. 그리고 2047년에는 그간 쌓아 둔 돈이 완전 바닥나 버리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노인에게 줄 연금은 매년 청장년층에게서 걷어서 줘야 한다. 보험료를 올리지 못하면 정부 재정에서라도 지급해야 한다. 이로 인해 청장년들은 2050년에는 월소득의 30%, 2070년에는 40%를 노인 연금 주는 데 내야 한다.

◆ 번번이 개혁 외면한 국회=연금이 골칫거리가 된 것은 애초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88년 연금이 도입될 때 받는 돈을 생애 평균 소득의 60%로 정하려 했다. 월 100만원 수입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60만원씩 연금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회는 노인 표를 의식해 이를 70%로 고쳐서 제도를 도입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2005년 4월 국회에서 "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하면서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으며, 심하게 말하면 사기를 친 것"이라고 말했다. 98년에도 기회가 또 있었다. 그러나 국회는 받는 돈을 소득의 55%로 낮추자는 안을 60%로 고쳐서 의결했다. 2일에는 한 짝인 국민연금법과 기초노령연금법 중 생색나는 노령연금법만 통과시켰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해 연간 15조~20조원을 절감하는 걸 전제로 연간 3조원이 드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는데 국회가 잘못된 결정을 했다"며 "단군 이래 최대의 재정사고"라고 말했다.

김영훈.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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