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일도 척척 알베르빌 자원봉사자|올림픽 성패는 우리 손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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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는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좋은 기록을 위한 훌륭한 시설일까, 관중들의 환호를 자아내는 멋진 승부일까. 아니면 스포츠사에 새롭게 쓰여질 각종 신기록일까.
이들 모두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자기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대가없는 헌신적인 희생으로 대회를 빛내고 있는 숨은 일꾼들, 즉 자원봉사자들의 활약 여부에 올림픽의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을 에는 강추위 속의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이나 고약한 냄새의 화장실 등에서 조그만 불평도 없이 맡은바 직분을 다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 없이는 매회 덩치가 커지는 올림픽행사를 소화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알베르빌 겨울 올림픽에도 통역·안내·경비·운전에서 청소 등 궂은 막일에 이르기까지 올림픽 관련 일치고 이들의 애정 어린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영어구사능력·외모·센스·의욕·전화 받는 태도·정신집중력 등 까다로운 테스트를 통해 7천9백24명의 자원봉사자를 엄선한 이번 올림픽에는 모두 1만2천명의 자원봉사 신청자가 몰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올림픽이 지구촌의 축제이듯 이들 자원봉사자들도 각양각지에서 모여든 갖가지 직업의 사람들로 구성, 「세계 가족」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자원봉사 신청이 줄을 이었고, 특히 지난 88년 캘거리 대회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캐나다 인들의 자원봉사 지원은 신청이 아니라 애원에 가까웠다는 것이 대회 조직위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농부·건축가·학생에서 운동 선수, 심지어 수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 자원봉사자 중 과거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던 로제씨 (60)는 이번 올림픽 기간 중 표 받는 일을 맡고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다보니 내가 이 올림픽의 주인이 된 것 같다』며 파안대소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의 종목별 훈련과 본부 임원들의 이동을 위한 차량 관계 체크에서 외부에서 걸려온 프랑스어 전화를 영어로 옮겨주고 선수단의 시내 안내, 선수촌 이용 등 제반 살림을 맡아보고 있는 자원봉사자는 프랑수아 루이군 (21)이다.
현재 그러노블 정치 경제 전문 학교 3학년으로 올 봄 졸업을 앞두고 있는 루이군은 평소 오전 10시까지 늦잠을 자곤 했지만 이번 대회기간 중 한국팀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야된다는 사명감 때문에 3시간 앞당긴 7시에 기상하고 있다고 익살을 떤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낯선 사람들과 사귈 기회가 주어지는 점에 신명을 느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는 루이군은 한국 선수들의 쾌활한 표정과 말 걸기가 거북할 정도로 딱딱한 북한 선수들의 모습이 무척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루이군을 포함, 알베르빌 올림픽의 숨은 일꾼들인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오는 23일 폐회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림픽 스타디움에 총 집합하게 된다. 【알베르빌=김인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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