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와송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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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와송처럼' - 조정권(1949~ )

파르테논 기둥쯤 와서

거대한 품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폐허의 하중을 견디고 있는

기둥감 하나 슬쩍 해오고 싶었다.

기둥서방으로 삼고 싶었다

고래 같은 품 하나 크게 안고

등이 안 닿게

비스듬히 누워 있는 우리나라 와송(臥松)처럼.


파르테논신전엔 남신이 없다. 여신도 오지 않는다. 신들은 가장 좋은 기둥을 내부에 이미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폐허 가이드와 폐허 관광객뿐이다. 폐허가 가장 좋은 기둥을 내부에 벌써 숨겼기 때문이다. 모두가 보고 가는 파르테논 기둥에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시인이 기대어 있다. 살다 보면 시인 하나를 누가 슬쩍해 가는 일은 없을까. 땅에 닿는 노송의 마음을 안은, 폐허에 수를 놓듯이 풀꽃을 가슴에 붙이고 무너지는 시간을 파르테논 기둥 하나가 붙들고 있다. 일어설 자, 시인을 기둥서방 삼고 일어날진저.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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