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망 폐쇄|김세헌<과기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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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88년 말에 발생한 산업연구원의 노사분규가 전산망 폐쇄라는 극한적인 상황에 도달한 사건은 전산망 서비스의 중단이 사회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일반에게 일깨워주는데 충분했다. 정부의 즉각적인 강경 대응으로 4시간만에 극적으로 이 사건은 종결됐으나 마찬가지 상황에서 전산망 폐쇄를 고려하고 있던 한국과학기술원이 전산망 폐쇄를 강행했다면 그곳에서 처리하고 있던 ▲입시채점업무 ▲증권회사의 대체결제업무 ▲기상예측업무 등의 중단으로 국민들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이 될 뻔했다.
이 문제에 관해 산업연구원 노조 측에서 쟁의방법의 온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 나라 전산업무 종사자들의 의식구조는 아직 매우 건전하다고 볼 수 있다.
파업이 자주 발생하는 영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전산망 중단사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73년 영국 체신부의 3개 컴퓨터센터에서 파업이 발생했다. 임금협상을 촉구하는 방편으로 전국 주요도시의 전화료작성 전산 시스팀의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따른 손실발생은 2천3백만 파운드로 평가되며 이때 임금인상에 성공한 직원들은 79, 80년 다시 파업을 일으켰다.
또 79년2월에는 정부 전산업무에 종사하는 1천3백 명의 직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해 중요한 정부 컴퓨터를 중지시켰다.
한편 컴퓨터 시스팀에 대한 고의적인 파괴행위는 파업으로 인한 사례보다는 외부인의 소행으로 발생한 경우가 많다. 특히 테러조직에 의한 소행이 많았다. 75년 일본 동경에 있는 한 회사에서는『동아시아 반일전선「전갈」』의 이름으로 전산실이 폭파됐다. 70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는 4명의 졸업생들이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전산실을 폭파해 연구원 한 명이 사망했다. 76년 이탈리아의 공산투쟁 조직은 컴퓨터가 자본주의 체제의 도구라는 이유로 10여 개의 전산실을 공격했다. 80년 프랑스에서는 한 폭력조직이 필립스희사에 침입해 컴퓨터 프로그램과 데이타를 파괴했다. 사건직 후 한 좌익신문에 게재한 발표문에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우리는 컴퓨터산업에 종사하고있기 때문에 컴퓨터가 갖는 현재와 미래의 위험을 잘 알고 있다. 컴퓨터는 기득권자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도구다. 컴퓨터를 통해 통제와 억압·신원분류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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