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전총리 경총연설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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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행정으로 기업 규제 말아야/간섭 심하면 지하경제 키워

<1면서 계속> 지금과 같이 총리와 장관은 물론 그 밑의 고위관리자들이 그 자리에서 1년을 넘기기 어려운 사정 아래서는 정책수립의 감행과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행정의 안정과 능률을 확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책수립과 예산편성에 있어 이른바 인기주의를 배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정부지도자의 확고한 경륜과 리더십이 중요하고 지식인과 매스컴의 사회교육 활동이 절실히 요청된다.
나아가 우리가 경제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업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째,기업은 가급적 자유로운 환경을 요구한다. 정부의 과도한 간섭과 규제 및 불합리한 정책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지하경제가 발달하든가,아니면 기업가의 「창조적 혁신」노력이 위축된다.
둘째,기업은 믿는 곳이 있어야 한다. 정부를 믿을 수 있어야 하고,특히 법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탈세방지를 위한 세무사찰을 행정적 상벌의 수단으로 남용하면 정부에 잘보이면 탈세도 용인되고,잘못 보이면 합법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기업에 주게 된다.
시정해야 될 일이 있으면 법을 고쳐 바로 잡도록 해야지 법에 저촉되지 않는 일을 행정력으로 탄압하면 기업은 믿을 곳이 없어진다.
기업은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원한다. 기업의 세계에는 거미줄같은 거래질서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은행이 고객들의 돈줄을 끊어버리면 당하는 기업의 낭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영향은 거미줄전체에 파급된다.
당국자들은 이 사실을 유의치 않고 붓끝 하나로 정책을 쉽게 선회하지만 그것은 기업경영의 최대 적인 「불확실성」의 원인이 된다.
우리의 제조업이 일반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소량·다품종주의 품질을 고급화하면 선진국 시장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도 있다.
아무래도 제조업과 관련해서는 부품제조업에서 우리의 돌파구와 설땅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정부는 수출보조라는 외국의 지탄을 피해가면서 부품생산의 창업과 투자를 촉진하는 세제·금융상의 조치,체계적인 기술지도,각종 부품전시회의 개최등 부품공업의 진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 사회 이 시대가 기업에 기대하는 것은 기업이 자본가 또는 경영자인 동시에 사회의 지도자가 돼 달라는 요청인 것같다.
기업인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좋은 물건을 값싸게 공급하는 일인데,그를 위해서는 한가지 사업에 전념할 것,탈세하지 말 것,부동산 투기에 손대지 말것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연 우리 모두가 깊이 음미해야 할 말이 아니겠는가.
기업의 내부환경 개선에 있어서는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다.
이제는 근로자를 단순한 고용인으로 보아 일 시키고 돈만주면 된다는 생각은 통용되지 않는다. 근로자는 개인·가정인·사회인으로서 인격의 주체다.
그들의 직장은 한 인격이 살아가는 현장이고 거기에서 그들과 희노애락을 나누면서 생활의 밑천을 버는 동시에 자신의 자질과 능력을 발휘해 남에게 인정받는 보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격의 소망을 계발하고 지원하는 시야에서 인사관리와 노사관계를 정립하지 않으면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시장경쟁에서 기업이 살아 남기 어려운 시대가 온 시다. 이러한 새로운 노사관은 한마디로 인보주의 또는 공생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이 말과 같이 쉽지는 않다. 경영자는 양과 같은 근로자들만 상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실인 즉 일부 근로자들은 너무 이기적이고,사리가 통하지 않고,무례하고,설득이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진보적인 경영자도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영자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만한 사실이 있다.
즉 그토록 다루기 힘든 근로자들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는 법이고,그에게 내재하는 어떠한 잠재력이 분출의 기회를 얻지 못해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무릇 인간은 우대한 잠재력의 소유자이고 평균적으로 그 잠재력의 10%밖에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일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오늘의 경제문제 기본과제는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기업환경을 정비하는 일이다. 이것 또한 정부의 결단,특히 공무원들의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기업계의 자구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산업정책의 기본과제는 경쟁력을 상실한 제조업의 국제적비교우위를 부품공업에서 찾아야 하고 그를 위해 적극적인 진흥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끝으로 기업인에 대한 시대적 요청은 사회적 책임과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우리기업인들은 지난 40년간 이나라 경제를 건설한 주역들이다. 앞으로도 기업가 정신과 리더십을 발휘해 오늘의 고난을 이겨 나갈 것으로 우리는 믿는 것이다.<정리=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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