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땐 '시체가 무기'? 합리적 해결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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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천 순천향병원에서 팔 골절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한 여중생의 부모가 시신을 가지고 농성을 하는 등 극단적인 충돌을 빚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족들은 골절수술로 사망할 이유가 없다며 병원 로비에 시신을 두고 농성했으며 병원측이 시신이 썩기 전에 부검해야 한다며 가져가려 하자 경찰까지 개입된 거친 몸싸움이 벌어지고 이 내용이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유포되기까지 했다.

결국 유족측이 인터넷에 올린 관련 사진, 동영상 등의 자료를 자진 삭제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하며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를 보기는 했지만 시신을 병원 로비에 두고 농성하는 극단적인 행태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이처럼 폭력이 동반된 의료사고 여파가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으나 명확한 해결방안이 없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극단적인 대립, 적지 않아 = 실제로 자신의 가족이 사망했을 때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경우 죽음 그 자체를 쉽게 인정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극단적인 경우 폭력·농성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청주성모병원 소화기내과 한정호 과장에 따르면 실제로 종합병원에서 위와 같은 결과가 드문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료사고 후 벌어지는 농성 사태에는 경찰조차 개입을 거린다는 것이 한 과장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병원에서는 사설경비원 등을 도입하게 되고, 이들과 유족간의 몸싸움이 벌어지는 결과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도 병원 측 사설 경호원이 몸싸움에 개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찰조차 개입을 꺼리는 사태가 결국 이번 순천향병원 사건과 같이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결과를 불러 온다는 것. 그러나 이번 사태의 책임이 유족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많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국장은 병원에 설명을 요구했으나 시신이 가족들의 동의 없이 영안실에 가는 등의 사태가 벌어지자 환자측 유가족들이 결국 이같은 사태를 벌인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전한다.

◇ 합리적 해결 방안은 없나 = 이와 같은 의료사고시에 실제로 환자측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법무법인 한강의 홍영균 변호사는 경황이 없더라도 일단 의무기록을 제일 먼저 확보할 것을 권한다.

의무기록은 의료법상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면 복사해 주어야 한다. 특히 시간이 지나고 사태가 커지면 변조될 수 있으므로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

그 다음은 병원과 원인이 뭔지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돈으로 합의를 한다거나 법적인 문제로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사태 악화를 막는 길이라는 것이 홍 변호사의 답변이다.

대화를 했음에도 원인 파악이 불충분하다고 판단이 들면 그때부터는 의료사고 전문가에게 의료기록을 가지고 가서 법적인 소송을 할 것인지, 합의를 할 것이지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순천향대 병원 사건과 같이 시위를 하거나 농성을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충고다.

홍 변호사에 따르면 병원에서의 농성은 업무방해가 아닌 의료법 위반이다. 의료법 12조 2항에 따르면 의료인의 의료행위를 방해하면 의료법 위반이 되어 업무방해보다 형량이 세다고 한다. 폭력이나 명예훼손이 포함된 행위 모두 이같은 사태에 포함된다.

시신을 두고 시위를 벌이는 것도 옳은 방법이 아니다. 유족들 입장에서는 허용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시신 모독이 된다. 결과적으로 정당성마저 잃을 수 있어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것만이 최선이다.

◇ 관련 법안조차 무용지물 =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유족측이 이처럼 강한 반발을 보이고 극단적인 방법까지 택한 것이 꼭 유족들의 잘못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청주성모병원 한정호 과장은 “병원도 잘못한 것은 있을테지만 시신을 가지고 데모를 하는 것은 문제”라며 “이번과 같이 시체를 가지고 농성을 벌이거나 심한 경우 응급실에서 환자들을 다 몰아내는 사태까지 경험한 바 있다”며 이같은 일이 드문 일만은 아니라고 전한다.

이같은 사태가 벌어진 데는 공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적은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선 적극적인 해결기구의 부재에 대한 문제가 지적된다.

의료사고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법안인 의료분쟁해결 관련법안은 이미 20년 가까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며 10년 전부터 운영되고 있는 중재위원회도 실질적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한 과장 외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법원에서조차 의료와 같은 전문분야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한 과장은 “가정법원처럼 이같은 사태를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의료법원이 있어야 한다”며 해결발안을 제시한다.

의료소비자연대 강태언 사무국장도 “현재 관련 법안이 있기는 있으나 의료사고의 특성을 감안하지 못하고 만들었다”며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한 법안이 빨리 만들어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부검조차 ‘못믿어’ = 이번 순천향병원 사건에서의 해결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부검이다. 그러나 그나마 객관적일 수 있는 부검조차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도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하는 일을 유족들은 꺼려했다.

강태언 사무국장은 “유족들이 아마도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폐색전증 등으로 가면 불가항력이라는 답변이 나왔을 것”이라고 의견을 전한다. 따라서 병원측에서 부검을 하자고 했음에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강 사무국장은 이처럼 해결이 어려운 경우 흔하게 제시되는 공식도 있다고 설명한다. 의료 사고시 의사가 손쓸 수 없는 병명으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예가 폐색전증, 심근경색증, 양수합병증 등이라는 것이다.

홍영균 변호사 역시 “부검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라고 설명한다. 부검이 꼭 유리한 결과만을 가져 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검이 그나마 객관적인, 최종적인 해결 방안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부정하기 어렵다. 강 사무국장이나 홍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조차 이번 사태와 같이 해결방안으로 부검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사태가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청주성모병원 한정호 과장 역시 부검이 신용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최근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 고 이한열 열사의 예처럼 부검 결과조차 위조되는 예가 이처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검은 법적으로 병원에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관계자들도 모르는 곳에서 진행되며 근거까지 다 남겨 놓도록 하는 규칙 등이 있는 객관적인 기관이므로 이마저도 신용할 수 없다면 해결 방안이 요원하다는 것이 한 과장의 의견이다.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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