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3의 “한탕”(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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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용돈에도 욕심이 생기고 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는 스릴도 맛보고 싶었어요.』
8일 서울 동부경찰서 유치장안.
동네친구 한명과 함께 심야에 가로판매대와 컴퓨터학원 등을 돌며 10여일동안 네차례에 걸쳐 필름·컴퓨터부품 등 5백여만원어치의 금품을 털다 붙잡힌 정모군(15·K중3·서울 중곡동)은 천연덕스럽게 범행동기를 이어갔다.
『3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남는 시간을 무료하게 지내기보다는 뭔가 흥미진진한 일을 하고싶었습니다.』
정군등은 지난달 27일 오전 1시쯤 서울 중곡동 가로판매대의 문을 드라이버로 뜯고 필름등 5만여원어치의 잡화를 닥치는대로 주머니에 주워담았다.
숨죽이며 가슴죄는 시간도 잠시뿐 영화에서나 볼수있는 「완전범죄」의 기쁨에 들떠 또다른 가판대·코피자판기 등 드라이버 하나면 손쉽게 털수 있는 곳으로 손을 뻗쳤다.
『훔친 물건을 사주는 사람도 없었고 방학중이라 친구들에게도 팔수 없어 봄이 되면 새친구들에게 넘겨 오락비용에나 쓰려고 집에 쌓아두었어요.』
간이 커진 정군등은 이어 빈집털이범으로 발전,설날인 4일 오전2시 주인이 고향에 내려간 틈을 타 컴퓨터 학원에 침입했다.
컴퓨터로 게임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범행 전날 미리 사전답사까지 마친 정군등은 컴퓨터 본체 4대·모니터 등 4백50여만원어치를 털어 집에 안전하게 보관했으나 「불운」하게도 학원열쇠뭉치를 들고다니다 불심검문에서 들통난 것.
쇠창살을 부여잡고 『제발 한번만…』을 애원하는 어머니(45)는 어처구니 없는 자식의 범행동기를 곱씹으며 힘없이 발깅릉 돌려야 했다.
유치장에 갇힌 현실속에서도 무관심한 표정,한때의 충동으로 꿈나무이길 스스로 포기한 정군의 어두운 미래가 유치장안을 더욱 무겁게하고 있었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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